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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주를 깨우친 날
    산행 과 여행/기타 즐거운 시간 2016. 6. 30. 14:04

      2004년 우정선교회까페에 올라온 글을 옮겨본다

      청평 홍원근 국장님의 찬송가 반주를 하게된 동기의 감동글이다


     <반주를 깨우친 날>
      형제님!
      샘물처럼 맑은 동해바다, 형제님 고향이 영일만라고요?.
      포항 가까운 교회에 저희 둘째외삼촌이 목사님으로 시무하고 계십니다.

      포항에서 영덕방향 첫번째 검문소인 달전 검문소에서 내려 '애도원 교회를 물어 찾아 오면 된다' 고 삼십여년전에 외삼촌께서

      교회를 옮기셨다고 저더러 왔다가라고 기별하셨지요.

     

      그때는 한창 찬송가 반주 연습을 혼자서 깨우치겠노라고 석달동안 죽기 살기로 매달리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깨우치기에는 그리 만만치 않은게 찬송가 반주였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기도하고 매달린 끝에 겨우 '반주의 문고리'는 잡은 것 같았습니다. 그 문고리를 돌려야 되는지 당겨야 되는지

      모르는 싯점에서 외삼촌의 호출이 있었던 것입니다.

     

      달전검문소에서 애도원 교회를 물었더니 검문하는 군인이 수상쩍게 한참 저를 아래위로 훑어 보았습니다. 저는 어렸지만

      그 사람 눈치가 좀 이상하여 어리둥절 했습니다.

     

      포항에서 흥해를 바라본 쪽에서 오른쪽 들판 한쪽 얕은 구릉지대에 애도원 교회가 하얀색으로 서 있었지요.

      갔더니 한센씨 병을 앓는 분들의 거주지였습니다. 교회는 그런 분들의 마을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는데, 정말 사모로서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사명감과 이웃사랑과 끝없는 긍휼함을 지니고 계신 외숙모님이 그분들과 같이 양지쪽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갈 수록 그분들의 얼굴형상, 손 등이 범상치 않아 좀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분들과 섞여 계시던 외숙모님이 반갑게

     부르는 소리에 얼떨결에 마을로 들어서서 결국 교회 사택까지 갔습니다.

     

     마침 수요일이라 저녁을 일찍 먹고 예배를 드리러 교회로 갔습니다. 교회에는 풍금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 이렇게 몸이 불편한 분들만 있는 동네에도 누군가가 반주를 하는 가보다' 하고 약간은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분홍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집사님이 환한 미소로 풍금앞에 앉아 반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소리가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풍금치는 여집사님의 손을 건너다 보았습니다. 순간 집사님은 손을 뒤로 쑥 감추었습니다.  강대상에서 찬송을 인도하시던 외삼촌이 자리로 돌아가라고 손짓을 했습니다만 저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연주하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탓입니다.

     

     계속 서서 바라보고 있으려니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여집사님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아......

     병으로 인해 한쪽 손가락이 헐어서 고름이 나고 또다른 손가락도 닳아지려고 피가 나오고 있는 손이었습니다.

     

     (그런 아픈 손으로, 천형을 받은 손으로.. 그렇게 기쁜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고 계셨구나....)

     강한 감동과 은혜가 온 몸을 휩싸고 지나갔고...


     뒤이어 작지만 강한 불덩이 하나가 제 가슴으로 들어와서 활활 타올랐습니다. 밤이라 몹시 추웠지만 난로도

     때지 않아(교회재정이 많이 어려웠습니다)좀 벌벌 떨면서 예배를 드렸는데, 영문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땀이 흘렀습니다.

     

     예배가 언제 끝났는지.... 외삼촌이 어깨를 흔들면서 걱정스러운 듯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들을 외삼촌에게

     설명하기에는 그당시에는 경황이 없었습니다. 외삼촌이 손을 잡아 끄는 바람에 일어나 사택으로 와서 자리에 누웠습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그래서 날씨는 매서웠습니다. 거의 잠이 들려 하는 찰나에 누군가 외숙모님을 대문앞에서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잠을 자려다 말고 외숙모님은 "집사님 추운데 얼른 들어오세요"

     (아무리 거룩한 우리 외숙모님이지만 나환자를 사택으로 그냥 들이시는구나...외사촌들이 아직 어린데 그 여린살에 나병균이

     옮으면 어떡하려고.... )

     저는 좀 많이 걱정이 되고 찾아온 분이 꺼려졌습니다.

     

     "아닙니다. 실은 내일 아침에 오려고 했는데.... 아까 저녁 예배때 보니 젊은 손님(저를 일컬음)이 오셨던데.... 낮에 흥해장에

      가서  미역을 두 오래기 샀는데,  하나는 우리가 먹으려고 풀었고, 하나는 사모님댁에 갖다 드리려고 두 번 비닐 포장을 해달라고

      해서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우리 손이 안 닿았으니 깨끗한 겁니다.... 미역은 미리 담궈 놨다가 삶아야 하는 거라서 밤

      늦었는데도 가져왔습니다.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제 눈에 더운 눈물이 마구 솟았습니다.

     돼지치기와 양계, 제한된 일 외에는 다른 건 할 수 없는 그 분들인지라 돈 마련하기도 정상인들보다 몇배 더 어려운데 그 어렵게

     번 돈으로 미역을 사왔고, 그것도 저를 위해서 이 눈오고 추운 늦은 밤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좀전까지의 꺼렸던 마음이 부끄럽고 그 분들의 삶이 한없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목이 메이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분들은 자신들의 손을 부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손이 닿지 않은 물건임으로 깨끗하다고 외숙모님에게

     새삼 깨우치는 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었습니다.

     여집사님이 진물나는 아픈 손으로 반주를 하시던 그 풍금이 대문보다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주여!!!" 크게 외치고 제 손을 내미니 제 손도 전봇대 만큼 커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저절로

     찬송가를 마구 쳤습니다. 아주 반주가 잘 되었습니다. 깨어 일어나니 새벽 세시... 집사님이 치던 건반에 나병균이 묻어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주만 할 수 있다면 이 분들과 돼지치고 닭치며 살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로 쫓아가 풍금을 쳐보니 역시 꿈속에서처럼 연주가 잘 되었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깨우친 찬송가 반주를 어언 삼십이년째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이 부족한 솜씨입니다.

     형제님이 포항에 계시다니 포항 가까운 흥해 '애도원 교회' , 그 잊지 못할 교회가 생각나서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아, 이야기가 좀 더 있습니다.

     

     찬송가 반주를 할 수 있었던 탓에 서울 집을 가질 수 있게 된 이야기....
     나중에 할 수 있을런지요...

     형제님께서는 청년부시절에 애도원교회에 봉사활동을 가끔 나가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그 애도원 교회에서 반주하시던 여집사님을 아실런지요..

     

     서울 강동우체국 지원과장님으로 계신 서충렬 형제님!!!
     서집사님의 꿋꿋한 믿음을 생각하면 정말 미덥습니다.
     우리 다함께 후일에 천국에서 만납시다.
     평안을 빕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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