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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토구미 마을은.....
    산행 과 여행/내고향 울릉도,독도 2009. 10. 8. 16:38

     

     

    저희 마을은 신비의 섬 울릉도의 서편에 위치한 작은 바닷가 마을입니다. 주민들 모두가 이웃사촌일 만큼 정감이 넘치고 풋풋한 옛 정취가 나는 마을입니다. 저희 마을은 동해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저녁 노을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오징어 덕장 사이로 붉은 해가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노라면 온갖 삼라만상의 생성과 소멸을 보는 것과 같은 심오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석양의 자취가 사라지고 찾아오는 조용함과 작은 파도소리들은 저의 마을만의 또 다른 일품장관입니다.

    작은 파도 소리를 뒤로하고 간단한 낚시대를 메고 갈 수 있는 대풍령 낚시터는 기쁨과 추억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철따라 다양한 어종을 낚을 수 있으며, 특히 한치와 방어를 낚을 때 느끼는 짜릿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낚시터의 움푹 파인 작은 바닷가 평지에서 홍합밥을 만들어 먹는 맛도 일품이며 저희 주민들과 내방객이 함께 즐길수 있는 곳입니다.

    태하황토구미마을의 오징어는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합니다. 신선한 바닷바람과 낮과 밤의 적당한 온도차는 갓 잡아온 오징어를 맛있게 말려줄 뿐 아니라 우리의 입맛에 맞는 오징어 육질을 생성합니다.

    저희 마을에는 마을안에 동남동녀의 고혼을 달래기 위한 성하신당이라는 사당이 있어 매년 음력 2월 28일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풍어, 풍년을 기원하고 선박의 진수가 있으면 반드시 여기에서 제사를 올려 해상작업의 안전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엔 마을의 큰 행사로 주관하고 있어 찾아오시는 분들이 섬마을의 토속적인 기원을 느낄수 있습니다.

    과거 태하동은 울릉군의 관문이었으며 울릉의 출발지였습니다. 이제 정보화마을을 계기로 전 주민이 힘을 모아 정보화를 통한 마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진력하고 있으며 새로운 도약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역사와 유래

     

    1882년(고종 19년)에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됨과 동시 도장제(島長制)를 실시한지 9년만인 1990년에 군제(郡制)를 실시하면서 이 섬을 저동과 달리 북쪽 산등성이를 타고 남서쪽으로 올라가서 최고봉인 성인봉을 거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서 태하령을 지나 태하동의 말바위와 남서동의 물칭칭 사이 산끝까지를 경계로 하여 그 서쪽을 서면(西面)이라 하고, 그 동쪽을 남면(南面)이라 해서 도동(道洞), 저동(苧洞), 사동(沙洞), 신리(新理), 장흥(長興)의 5개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에 군 면폐합(面廢合)에 따라 도동(道洞), 저동(苧洞), 사동(沙洞)의 3개동으로 통합으로 각 동마다 3구로 나누어 3동 9구제를 실시하였으나 1952년 4월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구제를 폐지하고 도동을 2개동, 사동을 2개동, 저동을 그대로 두어 5개동으로 편제하였다.
    1961년 도동, 저동, 사동을 자연부락 또는 동세에 따라 각기 3개동으로개편하여 9개 행정동으로 하였으며 1979년 5월 1일 울릉읍으로 승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 중 서면은 1906년 지방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 석문, 통구미, 남서, 구암의 5개동과 북면의 태하, 학포의 2개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으며 1914년 군, 면, 병합에 따라 통구미, 석문 남양과 남면의 장흥동 일부를 병합하여 남양동으로 남서, 구암을 병합하여 남서동으로 태하, 학포를 병합하여 태하동으로 개편하였다.

    그후 구제실시에 따라 남서동을 2개구로 남양동과 태하동을 각각 4개구로 나누어서 3동 10구제가 되었다가 1952년 4월 지방자치제 실시에 의하여 구제를 폐지하고 남서동을 2개동, 남양동과 태하동을 각기 3개동으로 해서 8개동으로 하였으며 1960년 8월에 태하동을 2개동으로 개편하여 7개 행정동으로 하였다.

    1971년 8월 태하 1,2동의 지리적 여건과 동세의 비대로 행정수요 증가 등의 요인으로 태하출장소를 설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태하동은 1882년 개척영이 반포되자 최초로 이주해 온 주민들의 본거지로 1902년까지 울릉군의 행정 중심지였고 울릉군에서는 본래의 토속적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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