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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릉(선조릉)
    산행 과 여행/국보, 고궁, 왕릉 탐방 2011. 2. 8. 15:56

     

    목릉(穆陵)은 조선 제 14대 왕인 선조와 정비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의 능이다.

    동구릉의 하나로 사적 제 19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다

      동원 이강릉인 목릉은 왼쪽에 선조가, 중간에 의인왕후, 오른쪽에 인목대비가 잠들어 있다.

    의인왕후(1555~1600)는 선조33년 6월27일 병으로 죽어 목릉에 가장 먼저 안장됐다
    동구릉에 태조의 건원릉과 문종의 현릉이 들어온 1452년 이후 이곳에 온 왕릉은

    의인왕후의 능이 108년만에 처음이다

     
     선조는 조선 최초로 왕비가 출생하지 않은 방계 출신의 왕이었고,

    의인왕후의 국상을 당했을 때는 임란 이후라 왕의 권위가 추락한 시기였다.

    의인왕후가 죽자 7월1일 택지를 의논했지만 11월이 돼도 결정되지 못했다.
    결정될 듯하면 어느 사대부의 문중 묘지가 있는 지역이라 이 핑계 저 핑계로 질질 끌어온 것이다.

    능으로 결정되면 서슴지 않고 다 내쫓아버리던 초기와 달리 신권의 문중 묘가 있으면 다른 핑계를 대서

    왕릉택지가 되는 것을 피할 정도로 왕권이 미약해진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결국 11월 초순 경기 포천의 신평으로 정하고 6,230명이 산릉부역에 동원돼 절반쯤 공사를 했는데

    술관(術官) 박제동이 그곳은 불길하다고 상소했고 이를 들은 선조는 할 수 없이 그동안 대신들이 주장하던

    건원릉 내로 택지를 정하라고 명한다.
    이때 영의정 이항복과 좌의정 이헌국이 현지 답사하여 정한 곳이 지금의 목릉이다.

    7개월이나 끌었던 의인왕후 국장은 12월22일 이곳에 묻힘으로써 겨우 끝이 나게 된다

     
     이후 선조도 대신들에 의해 건원릉 내에 떠밀리다시피 왔고 지금의 경릉 자리에 묻혔다가 풍수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다시 현재 목릉으로 천장했다.
    선조 이후 동구릉에 왕릉이 몰려와 왕실공동묘지 형태로 바뀌며 동오릉에서 동칠릉, 동구릉으로 바뀐 연유는

    왕권의 실추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면 된다.

    이는 조선 전기 왕릉 택지 과정과 후기의 왕릉 택지과정을 비교해보면 이해가 간다

     
     경릉 자리에 있던 선조의 목릉은 임진왜란 이후 왕릉 장인을 구하기 힘들어 부실한 산릉공사를 했기에

    병풍석이 기울자 인조8년(1630) 심명세가 광중에 물이 찼다고 천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장하려고 막상 파보니 보송보송한 흙이 나와 지켜보던 사람들이 분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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