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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아빠는 제가 꼭 살릴께요`, 감동의 대한민국 편지쓰기 대회 수상작
    우정사업 홍보/우정사업이야기 2013. 7. 26. 18:03

     

    급성간경변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간을 이식해주고, 현재는 암으로 투병중인 아버지의 건강을 기원하는 딸의 가슴 뭉클한 편지가 전국 14만8,000여명이 응모한 ‘2013 대한민국 편지쓰기대회’에서 일반부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습니다.

     

     

    (대상수상자 전미화씨와 아버님)

     

     

    일반부 대상을 수상한 전미화(33)씨는 편지글에서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자신의 희생으로 보답할 수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하며, 아버지께서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자신의 건강 때문에 딸의 몸에 상처를 내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과,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자신의 간을 이식해서라도 아버지가 다시 건강해질 수 있기를 바랬던 딸의 애틋한 마음이 편지에 녹아 있습니다.

     

     

     

     

     

    그리고 평소“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다”라며 말씀해주셨던 아버지의 말처럼 “아빠는 꼭 살아남는 강한분이 되실 겁니다”라며 투병중인 아버지에게 격려의 말도 함께 편지에 담고 있습니다.

     

     

     

     

     

     

     

     

    우정사업본부가 국민정서를 함양하고 편지쓰기 문화의 저변 확대를 위해 2000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2013 대한민국 편지쓰기 대회에는 지난 5월 한 달 동안 개최되었는데요. 전국에서 무려 14만 8,000여명이 응모를 했습니다.

     

     

     

    (김준호 우정사업본부장과 편지쓰기 대회 부문별 대상 수상자들)

     

     

    일반부 대상을 차지한 전미화씨(33) 외에도 초등부 저학년(1~3)은 왕지현양(대구 대성초등), 고학년(4~6)은 진수정양(강원 주문초등), 중등부는 홍유정양(부산 덕천여중), 고등부는 박준영군(성남 보평고)이 대상인 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을 차지했습니다.  이번 대한민국 편지쓰기 대회 입상작은 작품집으로 만들어져 전국 우체국과 학교 등에 배포됩니다.

     

     

     

     

    2013 대한민국 편지쓰기 대회 일반부, 고등부, 중등부, 초등부 대상 수상자들의 편지글입니다.

    여러분들도 편지에서 느껴지는 사랑을 함께 느껴보시지요.

     

     

     

     【2013 대한민국 편지쓰기대회 일반부 대상】

     

     

    성    명 : 전 미 화 (강원 원주)
    수상부문 : 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

     

    사랑하는 아빠께

     '아빠, 아빠는 꼭 제가 살릴 테니 걱정 마세요. 제가 꼭 살릴 께요...' 2012년 7월의 어느 날 제 일기장에 적혀있는 글귀랍니다. 그리고 보니 2012년에도 무더운 여름이 있었네요. 하루 종일 갑갑한 전투화를 신고 근무하는지라

    누구보다 더위를 싫어하는 저인데, 작년 여름은 땀방울보다 눈물방울을 더 많이 흘렸던 시간... 2012년 여름은

    제 기억 속에 그렇게 남아있네요.

     

    이른 여름휴가를 다녀온 후 딱 일주일 만이었지요, 여유롭게 한 주를 마감하던 금요일 오후, 다급히 걸려온 언니의 전화 한 통, "아빠가 병원에 실려 가셨는데... 뭔가 많이 좋지 않은 것 같아..." 잠시 시간이 멈춘 듯 멍한 기분이었어요. '이런 장면은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장면인데 왜 갑자기 나에게 벌어진 거지' 그렇게 멍한 기분으로 달려간 19번국도. 늘 즐거운 마음으로 오가던 그 길이 그날따라 왜 그리도 길게 느껴지던 지요. 겨우 달려가 마주한 아빠의 첫 모습. 휠체어에 겨우 앉아 병실로 옮겨가면서도 "왜 여기까지 왔냐" 며 손 사례를 치는 힘없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답니다. 상황이 많이 안 좋으니 내일 서울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아빠 앞에서는 애써 태연한척 했지만 그길로 화장실로 달려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이런 일은 드라마에서나 벌어지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시작되었네요. 서울로 옮겨가 정밀 검사 끝에 내려진 결론은 급성 간 경변. 그리고 유일한 해결책은 간이식 수술이니 3개월 안에 공여자를 구해 오라는 것이었죠. 엄마와 언니가 쓰러져 오열하는 가운데 그래도 저는 감사했어요. '그래도 다행이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다행이다 내가 살리면 된다.' 간이식 수술.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모르지만 그 어떤 것도 생각할 겨를 없이 그 순간 다짐했답니다. '아빠는 꼭 내가 살릴 거야.'

     

    하지만 저의 이런 마음과는 달리 아빠는 언니와 제 입에서 '이식'이라는 말도 못 꺼내게 하셨죠. 딸들에게 부모가 되어 그런 몹쓸 짓을 할 바에는 차라리 이쯤에서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고, 절대 그럴 수는 없는 거라고... 너무나 확고한 아빠의 마음을 돌리는 일, 정말 힘들었어요. 뇌사자 이식 대기 신청도 해 봤지만 이미 우리 앞에는 몇 천몇의 대기자가 있고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3개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이라는 말이 있죠. 저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처음 알았답니다. 뇌사자 이식은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이식 얘기가 나오면서 연락을 끊기 시작하는 친척들, 그리고 딸들에게 절대 받지 않겠다는 아빠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기까지 온통 그 생각밖에 없었답니다. 가족들 앞에서는 눈물 보이지 않고 씩씩했던 저이지만, 사실 그때 단 하루도 울지 않았던 적이 없답니다. 밥을 먹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업무 중에도, TV에서 개그프로를 보다가도 눈물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어요. '내가 일하고 있는, 온통 건장한 남자들로 가득한 이 부대에서 나를 도와줄 단 한사람도 없다니...' 가진 것을 모두 줄 테니 제발 아빠 좀 살려달라고 울며 애원하고 싶었어요. 세상이 원망스러웠어요.

     

    하루빨리 서둘러야 한다는 병원 측 설득에 따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부모님 몰래 언니와 저의 공여자 검사가 진행되었죠. 1,2차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병원에서는 체구가 작은 여성들은 보통 남성에게 이식을 할 때 2:1로 진행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둘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지만, 저는 그 순간에도 확신했어요. 언니는 몸도 약하고 돌봐야 할 조카도 있으니 꼭 저 혼자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종교가 없는 저이지만 매일 밤 신께 기도했어요. “제발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보름여의 초조한 시간이 또 지나고 드디어 나온 결과는 저 혼자서도 이식이 가능하다는 통보. 업무시간에 그 전화를 받으면서 너무 기쁜 나머지 감사 하다고 괴성을 지르며 울었답니다. 아빠와 혈액형도 다르고 간 사이즈가 작은 여자지만 이식을 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조건을 갖추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제 기도를 들어주신 신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그로부터 또 한달. 아빠를 설득하는 참으로 길고도 힘겨운 시간을 보냈지요. 매주 집에 가서 아빠한테 화내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하고... 돌이켜보면 저에게 가장 힘든 시간이었는데 아마 아빠도 그러셨겠죠. 너무나 강인하게 36년 군 생활을 해 오신 분이 목 놓아 우시며 결정하셨을 정도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요. 하지만 가족들의 바람대로 어렵게 결정을 해 주셨고 그렇게 2012년 9월 14일 아빠와 저의 간이식 수술이 시작되었지요.

     

     '수술 전날 잠이 안 올 거야, 수술실 들어가면 무서울 거야.' 라는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저는 너무도 편안하고 수술전날 숙면도 취했고 수술실에 들어가 마취가 되기 전까지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답니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 절실하고 간절히 기도하던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으니까요. 13시과 18간이라는 대수술을 통해 그동안 아빠를 힘들게한 간은 모두 제거가 되었고 저의 간 65%가 아빠의 몸 안에 자리 잡게 되었지요.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답니다. 잠시 잠자고 나왔을 뿐인데, 아빠에게 새로운 생명의 기회가 열렸다니 말이죠. 수술을 마치고 마취가 풀리지 않아 정신없는 와중에도 아프다는 말보다는 "아빠는?" 이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하네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날로 기억되겠지요.

     

    수술 후유증으로 인한 불편함 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 되었고,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이렇게 다시 복직해서 군 생활을 하며 그 힘겨웠던 시간을 떠올리고 펜을 잡고 있자니 새삼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이네요. 물론 여기서 우리가족의 아픔이 끝이 났더라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았는데... 면역억제제 부작용으로 인해 수술후 6개월 만에 아빠의 몸에서 발견된 대장, 간, 폐암은 또 다시 우리 가족에게 큰 시련을 주었고 아빠는 또 다시 수술대에 오르셔야 했죠. 이식도 모자라 암이라니... 짧은 시간동안 큰 수술을 두 번이나 거치면서 1년 사이 20킬로가 넘게 살이 빠진 아빠를 보며 처음에는 힘내시라는 응원의 말도 못 건넬 만큼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하지만 수술도 잘 끝났고 이제 앞으로 남은 6개월의 항암치료만 잘 이겨내시면 더 이상의 아픔은 없을 꺼라 저는 확신한답니다. 이식환자의 몸으로 항암치료를 버틴다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저는 절대 포기하지도 의심하지도 않아요. 예전에 어느 책에선가 그랬답니다. '생생하게 꿈꾸면 이뤄진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저는 늘 한 가닥 희망도 잃지 않았고, 매일 같이 간절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기도하며 꿈꾸었어요.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은 그 꿈이 이루어졌답니다.

     

    그러니 아빠, 아빠도 힘드시겠지만 절대 포기하시면 안돼요. 여군으로 살아가며 힘들어하는 저에게 아빠는 늘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다.' 라고 말씀해 주셨지요. 저는 그 말을 믿어요. 아빠는 꼭 살아남는 강한분이 되실 겁니다.

     

    그리고 부모가 돼서 자식들에게 이런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평생 죄인의 심정으로 살겠다고 하시는데 절대 그런 마음 안가지셔도 되요.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13년을 늘 객지에서 혼자 살던 제가 처음으로 부모님과 오랜 시간 함께 보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고, 빵을 좋아하시는 아빠 덕분에 제빵도 배우게 되었고, 몸에 좋은 콩고기며 요거트 만드는 법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많은 주위 분들로부터 효녀라는 과분한 칭찬까지 받고 있는 걸요. 그리고 아빠의 우려와는 달리 제 배의 상처는 너무나 예쁘게 잘 자리 잡아서 올 여름에는 과감히 비키니도 입을 생각이랍니다. 물론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뱃살이 문제지만요.

     

    우리 가족에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더 큰 행복이 오려고 잠시 모진 시련이 찾아온 것 같아요. 조금만 더 힘내 보아요. 언제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2013년 5월 3일
    막내딸 올림

     

    (추신) 머리카락이 자꾸 빠져서 아빠는 본인이 ET같다고 하시는데, 늘 말씀드리지만 아빠는 두상이 예뻐서 어떤 스타일을 하셔도 미남이세요.

     

     

     

     

     【2013 대한민국 편지쓰기대회 고등부 대상】

     

     

    성    명 : 박준영 (성남 보평고)
    수상부문 : 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

     

    씻을 수 없는 기억을 새겨버린 친구들에게.

    - 특히 기억에 남는 친구 동주에게 -

     

    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친구들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 동주에게 이 편지를 보냅니다.
    동주야 안녕? 잘 지내고 있는지.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네가 나의

    진심을 받아들여줄지 참 막막하구나.


    나의 잘못된 행동과 생각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였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른 마음가짐으로 중학교를 다녀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지. 난 소위 말하는 '일진'

    노릇을 하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괴로움을 주었어. 그때는 내가 정말 배려없이 행동한 거 같아.


    - 가만 있는 친구들에게 잘 하는 것 없다고 놀린 것.
    - 욕설을 하며 화를 낸 것
    - 등과 팔을 계속 툭툭 치며 때린 것
    - 지나갈 때 다리 걸고 어깨로 치며 장난을 심하게 친 것 등.

     

    지난 나의 행동을 돌이켜 생각하면 정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구나. 시작은 아무 생각 없었고, 충동적이었어. 쳐다 보기만 해도 폭력을 썼고 그러다 별 제재를 받지 않고 점점 익숙해지면서 아무 이유 없이 욕하고 때리게

    되었어. 그러다가 나에 대해 처음으로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렸어.

     

    그땐 정말...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라서 빠져 나갈 생각만 하고 선생님들께 거짓말만 했지. 그리고 징계를

    받았는데 징계 내용은 교내봉사였어 하지만 그때조차도 반성은 커녕 그 상황이 좋기만 했어. 지루하게 교실에

    앉아서 듣지도 않는 선생님들의 수업을 가만히 앉아 45분씩 듣고 있으니 정말 싫었지. 그리고 심지어 나를 신고한 너희들이 밉기만 했어. 입장을 바꾸어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중학교 2학년이 되어도 마찬가지였어. 그렇게 잘못된 폭력과 말은 고쳐지지 않았고 이렇게 지내다 또 내 잘못에 대해 진술서를 쓰라고 선생님들께서 말씀 하셨어. 나는 잘못한 것이 없어서 쓸 게 없다 했지. 그런데 그게 참 이상한 게 정말 생각이 안 났어. 내가 했던 모든 악행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 했지. 그건 아마도 상대방 입장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해서라 생각해.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한 것을 너희가 알면 얼마나 슬플까? 너희 입장을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고 미안하구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선생님도 크게 화를 내셨지. 그떈 화 내시는 선생님이 무서워서 너희들이 쓴 진술서를 그대로 인정했어. 정말 반성의 기미가 없었지.

     

    그렇게 징계를 받고 역시나 나는 또 그 상황이 되자 반성은 하지 않고 짜증만 났어. 나에 대해 안타깝다고 생각하셔서 훈계하는 주위 어른들의 말씀은 들리지도 않았고 나를 훈계한 선생님을 피하기만 하고 나를 바로잡으려는 부모님의 훈계가 듣기 싫어서 가출도 하고.. 비행이 비행인줄도 모르고 내 충동적인 감정에만 신경 쓰던 중학교 2학년이었어.

     

    이렇게 중학교 3학년이 되고 주위를 둘러 봤어. 나랑 어울리던 친구들을 제외한 아이들은 나를 피하기만 했지. 근처에 있다가 봉변당할까봐 두려웠던 거야. 그러던 중 학기 초에 갑자기 선생님이 나에게 진술서를 쓰라고 말씀하셨어. 이유를 묻자 그냥 네가 친구들에게 잘못한 모든 것을 쓰라고 하셨지.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선생님은 나에게 화를 내시면서 내가 생각나도록 어디서 뭘 했는지 알려주기 시작 하셨어. 그건 내가 2학년 때 저지른 학교폭력들을 너희들이 입을 모아 3학년에 올라와서 신고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지. 나는 역시 아무 기억도 안 난다고 하자 목소리를 높이며 너희들의 진술을 토대로 내 행동을 크게 말씀을 해주셨지.

     '내가? 내가 정말 그런 행동을?'
     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은 말한 대로 못쓸 짓들 뿐이었고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동이었어.

     

    잠깐 놀랐지만 다시 원점으로 그렇게 또 큰 반성 없이 징계를 받았어. 징계내용은 wee 센터와 정학 10일이였어. wee센터에 가자 내가 학교 폭력으로 온 걸 모르는지 가서 공예와 만들기만 계속 하고 놀기만 한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심성 수련의 일종이었는지도.

     

    일 주일정도 wee 센터에서 활동한 뒤 정학 10일 동안 학교 상담실에서 시간을 보냈어. 그리고 3학년 올라와서 처음으로 징계를 받고 피해자 학생들과 면담을 하는데 너희들 중 한 명이 울기 시작했어. 그 때 담임 선생님께서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겟지?”
    라고 했을 때 잘 알았어야 되는데 그 때는 너희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잘 알지 못했지. 그 때 네가 눈물을 흘릴 때 진심 어린 사죄를 했었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진심이 없는 용서를 빌었지. 시간이 많이 흐른 뒤지만 지금에 와서 정말 후회가 돼. 그렇게 징계가 끝나고 잠잠히 있다 또 이번에는 학교 화장실에서 때리고 시비 걸고 역시 버릇을 못 고치고 살다 역시 선생님이 또 진술서를 쓰라는 하셨어. 진술서에 내가 쓴 폭력을 기억나는 대로 적고 집에 오니 어머니께서 너희들 집에 사과하러 가자는 거였어. 그때도 정신을 못 차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갔지. 너희 어머니께선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도 알지 못한 채...

     

    그런 나에게 너희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들려 주셨어.
    “생명은 소중하고, 아이들은 누구나 소중한 존재란다. 너 역시 소중한 아이야. 한번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않겠니? 네가 친구에게 그러한 말과 폭력을 당했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니? 종이를 구겼다가 펴면 다시 펼 수는 있지만 흔적이 남는 것처럼, 남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면 오래 남기 때문에 행동을 조심해야 한단다.”

    아주머니께 그 말씀을 들은 그 때부터 나는 정신을 차린 거 같아. 혼나고 무서운 것 각오하고 갔는데, 내가 많이 미우셨을 텐데도 그렇게 따뜻한 말씀을 들려 주신 것이 감사하고, 내가 만약 그렇게 당했더라면 얼마나 슬플까. 그런 행동을 너에게 한 것이라니.. 이제 와서 후회하는 내 자신이 참 안타까웠어. 아주머니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고 나와서 여태까지 내가 해왔던 모든 악행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 내 자신과 내가 저지른 행동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고 큰 실망을 했어. 징계를 받고 나는 상담을 받게 되었어. 좋은 상담 선생님과 많은 상담을 통해 나는 충동을 억제하는 것을 배웠고, 바른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어.

     

    상담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무엇보다 너희 어머님의 따뜻한 말씀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기도 힘들었을거야.. 징계를 받고 반성을 하는 마음이 없다면 징계를 내려도 소용이 없는 것 같아.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뉴스를 보았어. 학교폭력으로 자살한 아이들이 참 많다는 거였어.

    ‘혹시 내가 쓴 폭력에 마음의 상처가 치유가 되지 않아 극단적인 결과가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너무나 두려웠고 크게 후회했지. 정말 그 때 뼈저리게 느꼈지 학교폭력은 얼마나 위험하고 무섭고 나쁘고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범죄 행위라는 것을.

     

    친구야. 이 편지를 읽고 정말 많이 화가 날거란 걸 알고 있어. 하지만 용기 내어 보내는 것은 이렇게 쓴 편지를 보고 가슴 속 앓고 있던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리길 바래. 내가 지은 죄는 없어지지 않지만 이렇게 용서를 빌게. 용서를 해주지 않아도 나는 할 말이 없어. 너희에게 했던 만큼 나에게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어. 나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했다는 게 정말 내 자신에 대해 화가 나.

     

    나는 소원이 하나 있어. 시간을 되돌린다면 너희랑 정말 친하게 지내고 싶어. 이제 와서 이렇게 말하는 나에 대해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정말 정말 너희에게 고마워. 내 폭력에 맞서 신고를 해줘서. 내가 만약 그 때 멈추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가지 않아. 지금의 바뀐 모습의 내가 있는건 네 덕분이고, 아주머님 덕분이야. 이렇게 지난 잘못을 알게 해주고 반성하게 해준 너희에게 정말 고마워하고 있어. 이제 와서 용서를 빌다니... 참 한심하지?...

     

    내가 만약 그 때 진작에 너희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항상 생각하고 있어. 그럼 너희에게 안 좋은 추억이나 상처를 남기지 않았을 텐데. 마음에 상처를 주어서 정말 미안해. 네가 나를 용서해 줄지... 용서를 받아주지 않아도 좋아. 나를 계속 미워하고 증오해도 좋아. 하지만 내가 이렇게 잘못을 빌고 내가 너희에게 한 일들이 큰 잘못 이란 것을 느끼고 언제나 너희에게 용서를 빌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 언젠가 다시 만나면 그때는 정말 웃으면서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만나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

     

    내가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너희를 보고 말할 사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야. 직접 만나서 사과하고 싶지만, 너희가 나를 만나기도 싫어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렇게 편지로나마 나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학교에서 보내는 하루 하루를 나는 너희 생각을 많이 하면서 친구를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주변을 많이 돌아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어. 누구라도 나와 같이 잘못된 길에 들어섰거나 그로 인한 피해를 당하고 있다면 나는 적극 나서서 그런 행동은 옳지 않은 범죄이고, 스스로 반성할 때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다고 용기 있게 말할 거야.

     

    나에게 기회를 주겠니?

    만약 너희가 나를 용서해준다면, 기회를 준다면 나는 너희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도록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할거야. 언젠가 나의 진심을 알아주었으면 해. 너희가 만들어준 지금의 나는 너희에게 정말로 미안하고... 고마워하고... 감사하고 있어..


    마지막으로 고맙고.. 미안하다…….


    2013.05.27.
    친구 박준영 씀.

     

     

     【2013 대한민국 편지쓰기대회 중등부 대상】


      

    성    명 : 홍 유 정 (부산 덕천여중)
    수상부문 : 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

     

     

    "홀로 고생하시는 아빠에게!  
     
    아빠, 제가 5월에 수학여행을 갔잖아요? 에버랜드에서 즐겁게 웃고 있는 가족들을 보니 딱 한명이 떠올랐어요.

    딱 ‘아빠’였죠. 


    아빠, 난 이렇게 가족들이 화목한 모습을 볼 때면 자꾸 어린 시절 엄마와 헤어질 때가 떠올라요.  6년 전 초등학교 2학년, 엄마가 너무 아프다고 했을 때 아빠가 일을 마치고 죽을 사와서 같이 먹었었잖아요. 먹으면서 아빠가 엄마에게 “어디 아프냐?” “많이 아프냐?” 라고 몇 번이나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괜찮다”가 전부였지요.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어요. 죽을 앞에 두고 점차 빨개지는 엄마의 얼굴과 두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을 보고서 건냈던 말이 고작 “많이 아퍼?”였으니까요. 그 때 내가 철이 더 들었더라면, 어리지 않았더라면 엄마의 아픔을 알았을까요? 조금 더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내고 안아드렸으면 엄마가 훌쩍 떠나지 않았을까요? 엄마의 “괜찮아.” 한 마디에 흐르는 눈물을 보고 철없이 울음을 터뜨린 나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어요.

     

     

    며칠 동안 늦게 들어오는 엄마를 보며 아빠는 알고 계셨겠죠?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날 준비를 하신다는 것을. 다음 날 찜질방을 가자는 아빠를 따라 나가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가지 않았을까요? 그 때로 돌아가 조금 더 엄마를 붙들고, 저를 꼭 안아주면서 놀다 오라는 엄마의 품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아빠와 저는 외롭지 않았을까요?

     

    아빠, 나는 아빠가 홀로 나를 키우며 고생하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엄마가 있었더라면, 떠나지 않았더라면 외로움이 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빠, 아빠도 나만큼 많이 힘들었던 것 알아요. 엄마의 마지막 편지에 한숨 쉬며,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펑펑 소리 내어 울던 나를 안심시키며 달래면서도 정작 아빠의 마음은 전혀 진정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 "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밤늦게 들리던 구두소리에 몸을 뒤척이던 아빠가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를. 받지 않는 전화를 수도 없이 걸던 아빠가 누구를 그리워했던 지를. 매일 드시던 술이 누구를 잃을 아픔이고 원망인지를.

     

    하지만 아빠, 아빠의 한숨 섞인 푸념으로 내뱉던 “엄마는 정말 나쁘다.”라는 말에 저도 엄마를 원망하게 되었어요. 엄마가 두고 간 마지막 편지에 적힌 나를 사랑한다는 말도 믿지 않게 되었어요. 몇 십 년이 지나 돌아온다고 해도 냉정하게 돌아서고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해 버렸어요.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지낸 것이 모두 엄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엄마가 남기고 간 한 켤레 신발처럼 그렇게 우리도 아무렇지 않게 버려졌으니까요.

    아빠, 엄마는 모를거에요. 아빠가 외할머니와의 통화 끝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셨는지. 그 곁에서 내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우리가 얼마나 아파했을지.

     

    아빠, 난 그래도 아빠랑 함께 있는 지금이 너무 좋아요. 한참을 아빠가 일하러 다니신다고 고모집에 지내게 됐을 때, 저 많이 힘들었어요. 고모이지만 눈치가 많이 보였어요. 그래서 홀로 우리 집으로 가서 컴컴한 방, 차디찬 바닥에 누워 잠이 든 적도 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남의 집이라는 느낌에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사촌들이 위로해주었지만, 전 엄마가 없었잖아요. 그래서 부끄럽고 서러워서 자꾸 눈물이 흘렀어요. 한 번씩 들러 저를 보러 오시는 아빠는 항상 술을 많이 드신 후였죠. 그 때마다 저는 엄마 없이 지내는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울기만 했죠. 아빠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나를 보며 화를 내며 짜증을 내며 왜 우냐고 큰 소리로 다그치셨지만 아빠, 저 그 때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요. 눈물이 제 대답이었다는 것을 아빠도 알고 계셨겠죠, 아빠가 더 아프셨겠죠? 한 때는 집을 나가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아빠, 이제 아빠랑 저랑 둘이서 사는 것에 적응되었고, 아빠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아빠, 저 알아요. 아빠가 저에게 얼마나 미안해하고 또 미안해하신다는 것을. 전 아빠를 볼 때마다 코가 찡해지면서 눈물이 쏟아져요. 아빠, 이제 우리 다른 가족들처럼 채워지지 않고 한 자리가 비어있지만 둘이서 행복하게 지내요. 매일 바쁘게 일을 하고 쉬는 날이면 피곤하다며 집에만 계시지 말고, 중학교 2학년 딸이 이제 철 좀 들었으니까 최대한 노력을 해서 엄마의 빈 자리를 채워볼게요.
      
    아빠 혼자 못난 딸 키우느라 매일 고생하시면서 저를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키워주시고 기죽지 않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앞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그 한사람은 바로 ‘아빠’입니다. 아빠, 아빠 앞에 놓인 고난과 어려움이 닥치면 저도 도와드릴게요. 그리고 우리 매 순간마다 행복을 누리며 살아요. 사랑해요 아빠.


                                                             2013년 5월 29일
                                               철들어 가는 못난 딸 유정 올림.

     

     

     

     

     

     【2013 대한민국 편지쓰기대회 초등부 대상】

     


    성      명 : 진 수 정 (강원 주문초등)
    수상부문 : 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

     

     

    안녕하세요. 할머니의 손녀딸 수정이에요.
    할머니께서는 언제나 늘 열심히 농사를 짓고 늘 웃으시는 미소가 정말 예뻐요. 어렸을 때 할머니의 손에 끼여져 있는 장갑을 만지면 말랑말랑해서 제가 “할머니 손은 왜 이렇게 말랑 말랑해?”하면서 물었던 기억이 나요. 그럼 할머니께서는 “우리 수정이 궁금하니?”하시면서 웃으시곤 하셨죠?

     

    언제나 할머니의 왼쪽손은 늘 장갑이 끼워져 있고, 오른쪽 손은 그렇지 않았어요. 전 늘 그것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어느날 엄마에게 "엄마, 할머니께서는 왜 매일 장갑을 끼고 계셔?”하고 물었보았더니 “할머니께서는 지금은 농사를 짓고 계시지만, 예전에는 정육점을 하셨는데, 고기 써는 기계를 청소하시다가 그만 실수로 고기 자르는 칼날에 한쪽 순이 잘리셨단다. 잘린 손을 얼음에 넣고 갔지만 신경이 다 죽어서 붙일 수가 없었단다. 속상하고 슬펐지만 방법이 없었어..그래서 지금처럼 한 손이 없는채로 장애인이 되셨단다.”하고 말씀해 주셨어요.

    얼마전 넘버원에서 보니 우유에 담그면 효과가 좋다고 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나요. 그때 제가 컸더라면 우유에 담그라고 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얘기를 듣고 할머니가 그때 얼마나 아프고 힘드셨을까? 생각하니 속상하고 슬퍼요. 할머니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장애인이 되신거잖아요. 할머니의 이양기들 듣고 모든 장애인들을 이해하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엄마는 “수정아 장애인은 처음부터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할머니처럼 살다가 어쩔 수 없이 사고나 실수로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단다. 그러니 장애인이라고 무시하거나 힘든것을 보고 모른척하고 그러면 안 된단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니 도와주어야해“라고 했어요.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들 듣고 보니 장애인을 보면 제가 도와 줄 수 있는건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를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제가 도와드리고, 제 도움이 부족 할 때는 다른 어른의 힘을 빌려서라도 도와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얼마전에 후 시리즈에서 읽은 루이브라유도 3살 때 송곳을 갖고 놀다가 송곳에 찔려 왼쪽 눈을 실명하고, 4살 때 오른쪽 눈마저 감염되어 시력을 잃게 되었어요. 그래도 그는 쓰기 힘든 점자가 아닌 쉽게 읽고 쓸수 있는 점자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맹인들이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게 한 인물이에요. 전 이 책을 읽고 장애인이 어쩌면 우리 비장애인보다 더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니 우리 할머니도 힘내세요. 할머니께서는 장애인이셔도 더 열심히 농사도 지으시고, 제가 놀려가면 맛있는 것도 해 주시고, 저와 함께 놀아도 주시잖아요. 제가 할머니의 손이 되어서 많이 도와드릴께요. 용기 잃지 마시고 수정이의 미소할머니로 언제나 있어주세요.

     

     

                                                   할머니의 예쁜손녀 수정 올림

     

     


     

     

     【2013 대한민국 편지쓰기대회 초등부 대상】

     

     

    성    명 : 왕 지 현 (대구 대성초등)
    수상부문 : 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

     

     

    아버지께 !
    안녕하세요! 아버지 아버지, 하늘나라에도 여기만큼 더우세요?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한번도 보지 못하고 사진으로만 봤어요. 직접 제 눈으로 아버지를 보고 싶어요. 아버지 아버지도 저 꼬맹이 한살때만 보셨죠? 저 벌써 열 살이 되었고 초등학교 3학년이에요. 저도 아버지를 한살때 뵙고 아직까지 얼굴을 못 봤어요.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시지 않았다면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도 또 학교에서 공개수업 하는 것도 그리고 운동회에도 와서 가족들이랑 김밥도 같이 먹고 할텐데. 다른 친구들은 쉬는날 가족들이랑 놀이공원도 가고 가족끼리 여행도 가고 하는데 우리는 아빠가 없어서 또 엄마가 쉬는 날도 일을 가시기 때문에 가족간에 행복한 시간을 제대로 가져 보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아빠를 원망하지는 않아요. 저는 그냥 아빠얼굴을 한번만 봤으면 좋겠어요. 아빠를 무척 보고 싶어요. 여기 대구는 날씨가 무척 더워요.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또 거기에서 오빠랑 저랑 엄마랑 많이 생각해주세요. 우리 가족을 생각하고 우리가족 모두 건강하고 아빠없이도 행복하게 잘 살도록 기도해 주세요.

     

    아버지는 제가 너무 어려서 돌아가셔서 얼굴도 생각이 나지 않고 떠오르지도 않아요. 밤에 제 꿈에도 한번 오시지도 않고 아빠꿈 속에서 저와 우리가족들에게 한번 나타나셨으면 좋겠어요. 아빠의 얼굴도 볼 수 있고 또 "아빠, 아빠, 보고 싶은 아빠" 이렇게 불러보고 싶어요.

     

    하지만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 한가지는 있어요. 그건 바로 아버지의 이름이에요. 아버지의 이름은 '왕! 진! 배!' 이시죠? 저는 아빠가 살아 계실 때 얼굴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우리 아빠가 이렇게 잘 생기셨구나 하고 알고 있어요. 엄마는 오빠와 제가 엄마보다 아버지를 더 많이 닮았다고 하셨어요. 아빠! 하늘나라 그곳에서도 항상 건강하시고 우리가족을 지켜 주세요.

     

    비록 기억도 없고 너무 짧은 1년이지만 저를 정말 정성스레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2013년 5월 22일 수요일
    대구대성초등학교 왕지현 올림

     

     

     

     

    출처 : 우정마을
    글쓴이 : 우정사업본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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