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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릉 팔경과 겨울모습
    산행 과 여행/내고향 울릉도,독도 2008. 12. 28. 11:15

    ♠ 신비의 섬 울릉도 성인봉 ♠

     

     

     

     

    섬 중심부에 최고봉인 성인봉(984m)이 자리하고 있다.

    최고봉의 북쪽에는 용암의 퇴적으로 형성된 알봉분지와 나리분지의 평원이해발 300m 위치에 약 150만평으로

    넓게 펼쳐져 있고 주봉에서 뻗은 4대 산릉은 바다에서 단애(斷崖)를 이루면서 기암절벽의 아름다운 해안선을 이루고 있다.

    섬에는 동백나무, 참식나무, 후박나무 등 상록활엽수 17종, 솔송나무, 섬잣나무 등의 침엽수가 8종, 한지식물인 주목나무,

    향나무 등 총 575종의 식물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텅비어 있던 울릉도는 1882년 8월에 개척령이 선포되어 1883년에 16가구 54명이 정식으로 이주한 후 강원도가 관할하다가

    1903년부터 경상북도로 이관되고 1949년부터 군제가 실시되었다.

    주민생활은 오징어잡이를 주업으로 하고 있으며 행정의 중심지는 도동에 있고, 동해 최대의 어업전진기지인 저동은

    성어기에는 전국에서 모인 어선으로 서울 남대문시장을 방불케 한다.

    그리하여 숙박시설이 주로 도동과 저동에 집중되고 있으며 천부동, 현포동, 태하동 등에서는 민박이 가능하다.

    울릉도는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며 도둑, 공해, 뱀이 없는 3무의 섬이며 香, 風, 美, 水, 石의 5다의 천연공원으로서

    등산과 관광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한편 쾌청한 날이 연간 50여일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변화무상하여 섬을 찾는 관광객들을 당황케 할 때가 허다 하다.

    - 울릉팔경(鬱陵八景) -

    1)도동모범(道洞慕帆) : 도동항 석양 무렵 오징어배 출어 모습

    2)저동어화(苧洞漁火) : 저동 야간의 오징어잡이 불빛

    3)장흥망월(長興望月) : 사동에 뜨는 달

    4)남양야설(南陽夜雪) : 겨울철 달밤 남양의 설경

    5)태하낙조(台霞落照) : 태하의 석양 무렵

    6)추산용수(錐山湧水) : 추산 용출수에서 솟는 지하수

    7)나리금수(羅里錦繡) : 나리동의 비단 같은 단풍

    8)알봉홍엽(알봉紅葉) : 알봉의 단풍

    ♣ 명소 ♣

    (1) 울릉읍

    ▣ 도동항


    포항과 묵호에서 3시간, 만남의 설레임과 이별의 아쉬움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곳으로 왼쪽에는 개척민들의 망향가를

    대신 불러주던 망향봉이, 오른쪽에는 2,500년의 울릉도 지킴이 향나무가 서있는 행남봉이 오가는 사람들을 맞는다.

    ▣ 도동 약수공원

    공원 내에는 약수터, 향토 사료관, 독도박물관, 독도전망케이블카, 안용복장군 충혼비, 청마 유치환의 '울릉도 시비' 등이

    있는 역사 체험장이다.

    ▣ 해안 산책로(행남등대 가는 길)

    도동 부두 좌측 해안을 따라 개설된 산책로가 절경이다. 자연 동굴과 골짜기를 연결하는 교량 사이로 펼쳐지는

    해안 비경을 감상 할 수 있다. 해안 산책로는 행남이라는 마을과 이어지며,

    이 마을 어귀에 큰 살구나무 한 그루가 있다고 해서 살구남으로도 전해오고 있다.

    마을에서 400m 정도의 거리에 있는 행남등대는 먼 뱃길을 밝혀 준다. 해송사이로 이어지는 등대 오솔길은

    가을철에는 노란 털머위 꽃이 군락을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등대에서는 저동항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 저동항

    저동항은 1967년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되어 1979년 12월 항만 공사가 완료되었으며 10톤급 선박 510척,

    30톤급 선박 150척을 수용할 수가 있다.

    태풍 등 기상특보시 동해 먼 바다에서 조업 중인 선박의 안전을 지켜준다. 울릉도 오징어 대부분이 이 저동항에서 취급을 한다.

    ▣ 촛대암(촛대바위)

    옛날 지금의 저동 마을에 한 노인이 아내와 일찍 사별을 하고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조업을 나간 노인의 배가 심한 풍랑을 맞아 돌아오지 않았다.

    상심한 딸은 바다를 보며 눈물로 며칠을 보낸 후 아버지가 돌아온다는 느낌이 들어 바닷가에 가보니

    돛단배가 돌아오고 있었다. 딸은 기다리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배 있는 쪽으로 파도를 헤치고 나갔다.

    그러나 파도를 이길 수 없어 지쳤고, 그 자리에 우뚝 서 바위가 되었다.

    그 후 이 바위를 촛대바위 또는 효녀바위라고 부른다.

    일출이 뛰어나게 아름다운 곳으로 부근은 낚시터로 개발되어 있다.

    ▣ 봉래 폭포

    저동에서 2km에 위치한 3단 폭포로 상단부분이 높이 25m이다.

    원시림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라 보는 이들은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

    1일 수량은 약 2,500톤 정도이며 울릉읍 주민의 식수원이다. 봉래 폭포 내에는 풍혈, 투막집, 삼림욕장, 궁도장 등이 있다.

    ▣ 내수전

    울릉도 해맞이의 명소인 내수전은 닥나무가 많이 자생해서 저전포라고도 했다.

    개척당시에 김내수라는 사람이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하여 내수전이라고 부른다.

    울릉읍 지역에 사용하는 전력을 공급하는 화력 발전소와 약수터가 있고,

    여름철 해수욕장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으며 야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 내수전 일출 전망대

    내수전 일출 전망대에 올라서면 죽도, 관음도, 섬목이 한눈에 보인다.

    넓게 뻑은 수평선과 청정한 바다를 보며 가슴이 확 트이는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가 있다.

    이곳에서부터 북면의 석포마을까지 1시간 30분 정도의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 죽도

    울릉도의 부속섬 중 가장 큰 섬으로 대나무가 많이 자생한다. 저동항에서 동북방으로 4km, 도동항에서 7km,

    섬의 면적 62,880평, 높이 106m, 현재 1가구 2명이 살고 있다.

    이 섬은 울릉도와는 달리 물이 없어 빗물을 모아 식수로 사용하고, 나선형 계단은 이 섬의 유일한 진입로다.

    무공해 더덕이 우명하다.

    ▣ 사동리

    이 마을 뒷산의 모양이 사슴이 누워있는 것 같다고 하여 와록사(臥鹿沙)라고도 하고,

    옥과 같은 모래가 바닷가에 누워있다는 뜻에서 와옥사(臥玉沙)라고도 하였다.

    지금은 모래가 많다는 뜻으로 모래 사(沙)자를 써서 사동이라고 한다.

    ▣ 흑비둘기 서식지 후박나무 숲

    흑비둘기는 울릉군의 상징새로 후박나무 열매를 좋아하며 천연기념물 제215호로 지정된 희귀보호종이다.

    후박나무 숲 앞은 사동해수욕장이다.


    (2) 서면

    ▣ 통구미

    서면 남양 3리, 거북이가 마을을 향해 기어가는 듯한 모양을 보고 거북이가 들어가는 통과 같다 하여 통구미라고 부른다.

    통구미 향나무 자생지는 천년기념물 제48호로 지정되어 있다. 포수 앞 바위는 거북이를 닮았다고 하여 거북바위라고 부른다.

    ▣ 남양

    비파산을 사이에 두고 양쪽 골짜기에서 냇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다른 마을보다 골짜기와 시내가 많다고 하여 골계라고 불렀다.

    지금은 울릉도에서 가장 따뜻한 남쪽이란 뜻으로 남양이라고 한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가장 빨리 녹는 지역이기도 하다.

    ▣ 비파산(국수산)

    남양리의 마을 뒤편에 위치하며 암석의 주상절리 현상으로 산 한쪽 면이 국수를 말리는 모양 또는 비파모양을 하고 있다.

    옛날 우산국의 왕녀 풍미녀가 딸 하나를 남기고 죽자 우해왕은 사랑하는 왕비의 죽음을 슬퍼하여 뒷산에 병풍을 치고

    대마도에서 데려온 열두 시녀에게 매일 비파를 뜯게 하고 백일제사를 지내서 비파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 남서리 고분

    남양 버스 정류장에서 1.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근에 찬물내기라고 하는 물 맛좋은 샘이 있어 쉬어가기에 제격이다.

    이 일대는 울릉도에서 고분이 가장 많이 밀집.분포하고 있는 유적지이다. 무덤은 지형의 제약을 받아 산록경사면에

    괴석으로 위가 편평하게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시신을 안치하는 돌덧널을 만든 후 돌로 봉분을 만든 석총이다.

    개석으로 큰 장방형의 황강암을 사용했는데 돌덧널 입구 전면이 수직벽으로 되어 있는 형태는 삼국시대 울릉도

    고분에서만 볼 수 있다.

    ▣ 남양 조약돌(몽돌) 해수욕장

    울릉도 특유의 몽돌 해수욕장으로 가족과 함께 지내기가 적당한 장소이다. 특히 검은 조약돌 위에 달빛이 부서지고

    하얀 파도가 속삭이듯 밀려오는 여름밤의 풍경은 찾는 이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해변은 1km이며 수심은 1-3m정도이다.

    ▣ 사자바위

    신라왕은 강릉군주 이사부를 보내어 우산국 토벌길에 올랐다. 신라군은 군선의 뱃머리에 목사자를 싣고 있었다.

    목사자로부터 일제히 불을 뿜으며 이 짐승을 풀어 섬사람을 몰살시키겠다고 하자

    우산국의 우해왕은 투구를 벗고 신라의 이사부에게 항복했다. 우산국은 멸망했지만 전설은 남아,

    그 때의 목사자가 사자바위로, 우해왕이 벗어 놓은 투구가 지금의 투구봉이 되었다고 한다.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다.

    ▣ 남서 일몰 전망대

    사태구미 해안변에 병풍처럼 펼쳐진 단애 절벽과 기암괴석, 넓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너무나 아름답다. 전망대 정면에 남근바위가 기개 좋게 우뚝 솟아 있으며

    건너편 산자락에는 이 남근 바위가 부끄러울세라 등을 돌리고 있는 색시(일명 숙녀바위)바위가 바라다 보인다.

    남근바위는 예로부터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남근바위를 보고 소원을 빌면 자식이 태어나고,

    정이 없는 부부가 남근 바위를 바라다보며 사랑을 고백하면 부부의 정이 깊어지고 자손이 번창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학포

    태하보다 규모가 작고 황토가 많아 소 황토구미라고 하였다.

    마을 뒤편 암산에 학이 앉아 있는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학포라고 한다.

    ▣ 성하신당(聖霞神堂)

    조선 태종 때 삼척인 김인우는 울릉도 안무사를 명받아 울릉도 거주민의 쇄환을 위하여 병선 2척을 이끌고

    이곳 태하동에 도착했다. 관내 전역에 대한 순찰을 마치고 출항을 위해 잠을 자던 중 해신이 현몽하여

    일행 중 동남동녀 2명을 이 섬에 남겨두고 가라고 했다.

    안무사는 일행 중 동남동녀 2명을 섬에 남겨두고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갔다.

    몇 년 뒤 다시 울릉도 안무사의 명을 받고 태하동에 도착하여 수색을 했는데,

    그 때 유숙하였던 곳에서 동남동녀가 꼭 껴안은 형상으로 백골화되어 있었다.

    안무사는 동남동녀의 고혼을 달래고, 애도하기 위해 그곳에다 간단한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고 돌아갔다.

    그 후 매년 음력 2월 28일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풍어, 풍년을 기원하고 선박의 진수가 있으면 반드시 여기에서

    제사를 올려 해상작업의 안전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한다.

    ▣ 태하 황토구미

    황토굴에 많은 양의 황토가 있어 황토구미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의 황토가 나라에 상납까지 되었다고 하며

    조정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삼척 영장을 이 섬에 순찰을 보냈는데, 순찰의 증거품으로 이곳 황토와 향나무를 받았다고 한다.

    (3) 북면

    ▣ 현포

    가문작지, 거문작지, 흑소지, 현소지 등으로 불리며 동쪽에 있는 촛대암의 그림자가 바다에 비치면 바닷물이

    검게 보이는 데서 유래한다. 18세기에 제작된 해동지지의 울릉도 부분을 보면 이 지역에 석장 20여 기와 탑이 있는

    사찰 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이곳에 촌락기지 7개소와 석물, 석탑 등이 있었다고 하며 성지,

    나선장, 선돌과 같은 유물, 유적이 많아 고대 우산국의 도읍니로 추정되고 있다.

    ▣ 현포리 고분

    경상북도 기념물 73호로 완만한 경사면에 40여 기가 분포되어 있다. 석총 양식의 무덤은 기간을 조성하고 가운데

    장방향 돌방(石室)을 만들어 시신을 넣고 그 위에 돌로써 봉분을 만든 석총으로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공암(코끼리 바위)


    바위 모양이 코끼리가 코를 물 속에 담그고 물을 마시는 모양을 하고 있다. 표면은 주상절리 현상에 의해 장작을 패어

    차곡차곡 쌓아 놓은 듯한 형체로 코부분에 직경 10m의 구멍이 있어 소형선박이 드나들 수 있다.

    ▣ 송곳산

    높이 430m, 성인봉의 한줄기 산봉우리가 송곳처럼 뾰족하게 생겼다고 하여 송곳산으로 부른다.

    인근 마을도 송곳산의 한자명인 송곳 추(錐)자와 뫼 산(山)자를 써서 추산이라고 한다.

    추산 정상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큰 구멍이 있다.

    ▣ 천부

    예선창 또는 왜선창이라고 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왜선들이 이곳에서 배를 만들어 고기를 잡고,

    이 섬의 진수귀목을 도벌하여 운반하였기에 왜선창이라고 했다.

    옛날부터 있었던 선창이란 뜻에서 예선창이라고도 한다.

    ▣ 나리(나리분지)

    면적 1.5-2.0㎢, 동서 약 1.5km, 남북 약 2km로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지대이다. 성인봉 북쪽의 칼데라화구가 함몰하여

    형성된 화구원이다. 그 안에 분출한 알봉(538m)에서 흘러내린 용암에 의해 다시 두 개의 화구원으로 분리되어

    북동쪽에는 나리마을, 남서쪽에는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알봉마을이 있다.

    우산국 때부터 사람이 살았으나 조선조에 이르러 공도정책으로 수백년 비워오다가 고종 때 개척령에 따라

    개척민들이 이곳에 왔다. 옛날부터 정주한 사람들이 섬말나리뿌리를 캐어먹고 연명하였다고 하여 나리골이라 부른다.

    개척당시 울릉도 제1의 집단무락이었다. 주변관광지로는 너와집, 투막집, 울릉국화, 섬백리향군락지, 용출소, 신령수,

    야영장이 있다.

    ▣ 성인봉


    산의 모양이 성스럽다고 하여 성인봉(聖人峰)이라고 부른다. 연평균 300일 이상 안개에 쌓여 신비로움을 더하며

    제단처럼 된 바위에는 장군 발자국이라고 전하는 족적이 있다.

    이 발자국은 왼발로 본토 어딘가에 오른쪽 발자국이 있다고 한다.

    해발 984m 성인봉은 형제봉, 미륵산, 나리령 등 크고 작은 산봉우리를 거느리며 섬피나무, 너도밤나무,

    섬고로쇠나무 등의 희귀수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정상부근은 천연기념물 제189호로 지정되어 있다.


    ▣ 삼선암

    삼선암은 멀리서는 2개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3개로 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바위의 빼어난 경치에 반한

    세 선녀가 이곳에서 자주 목욕을 하고 하늘로 올라가곤 했다.

    한번은 놀이에 열중하다가 돌아갈 시간을 놓쳐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산 세 선녀가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다.

    나란히 붙은 2개의 바위에는 풀과 나무가 자라고 있으나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끝이 가위처럼 벌어져 있어

    가위바위라고 불리는 일선암에는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다.

    삼선암 중 이 바위가 막내 선녀이며, 이 막내가 좀더 놀다 가자고 졸라대는 바람에 하늘로 올라가는 시간을 놓친 탓에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가장 많이 받아 풀도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울릉도의 3대 절경 중 제 1경으로 꼽힌다.

    ▣ 관음도(깍새섬)

    섬의 높이 106m, 면적은 21,600평으로 동백나무, 억새풍, 부지갱이, 쑥 등 각종식물이 자생하고 있으며

    섬 아래쪽에 2개의 동굴이 있다. 옛날 해적들의 소굴이었다는 관음쌍굴은 높이 약 14m로 해적들이 이곳에 배를 숨기고

    있다가 지나가는 선박을 약탈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개척 당시 경주에서 입도한 월성 김씨라는 분이 고기를 잡다가 태풍을 만나 이 섬에 피해 올라와 추위와 굶주림에 떨다가

    밤에 불을 피워 놓으니 깍새가 수없이 나라와서 잡아 구워먹었더니 맛이 좋았다고 하며,

    옛날 깍새가 많았던 곳이기에 깍새섬이라고 한다.

    두 동굴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배 위에서 받아먹으면 장수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석포

    정들깨, 정들포라고도 한다. 개척 당시 주민들이 정착한 후 수년간 살다보니 정이 들어 외지로 이주할 때

    울고갈 정도라 하여 정들포라고 하였다.

    훗날 마을 이름을 지으면서 돌이 많다고 해서 석포라고 했다.

    ▣ 섬목

    정들포 동쪽에 산이 바다로 뻗다가 중간이 끊어져 배가 왕래하게 되고, 다시 일어서서 깍새섬이 되었다.

    이 사이가 섬의 목과 같다고 해서 섬목이라 하며, 배를 정박하기에 좋은 항구라고 하여 선창포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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