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의 원비이자, 정종과 태종의 어머니인 신의왕후는 1391년 조선 건국 1년 전에 건강 악화로 사망하여,
개성에 묻혔으며, 5년 후인 1396년 사망한 둘째부인이자 정비인 신덕왕후의 능묘는 서울 성북구에 존재한다.
태조는 경기도 구리에 묻혀 어느 왕비와도 같이 묻히지 못하였다.
본래 태조는 신덕왕후와 같이 묻히고 싶어하였으나 신덕왕후를 혐오하던 태종은 이러한 태조의 뜻을
거스르고 구리에 능을 조성하였다
이성계의 건원릉은 고려 왕릉 중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공민왕의 현릉(玄陵)을 본 따서 박자청이
주도해 만든 능이다. 조선초기의 능인 건원릉과 태종의 헌릉은 조선왕릉의 기본제도를 마련한 유명한
건축가인 박자청의 작품이다. 북한 개풍에 있는 태조의 원비 한씨의 제릉도 박자청이 지휘한 건축이고,
북한 개풍군 정종의 후릉도 석물이 태종의 헌릉과 똑같은 것으로 보아 박자청의 작품으로 보인다.
뛰어난 궁중건축가였던 박자청은 무신출신이었으나 공조판서로 세종대까지 조선초기의 중요 건축에
빠지지 않던 인물이다. 당시의 건축기술로는 난공사였던 연못 위에 건물을 짓는 경회루를 완성한 것도
박자청이고 창덕궁의 인정전도 박자청이 총 지휘한 작품이다
이 유명한 건축가인 박자청의 사부가 김사행이고 김사행은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왕릉을 호화판으로
만들어서 백성들의 원성을 들은 건축가이다. 김사행은 강비의 정릉 공사를 맡았지만 왕자의 난에
연루돼 사사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