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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월간산 10월로 기사(백두산....)
    해외산행 및 여행/중국, 일본 2009. 10. 29. 16:23
    [초점] 중국, 백두산 대대적 개발 속셈은?
    중국, 3조7,000억 들여 백두산 개발
    집안(集案)엔 중국 속의 고구려역사박물관 10월 개관

    백두산 서파 입구. 온통 한국 등산객,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입구엔 ‘장백산’이란 커다란 글자를 붙여 놓은 매표소가 있다. 우리에겐 백두산인데 중국 측은 장백산이라 부른다.

    매표소를 지나 등산로로 들어서는 순간 쭉쭉 뻗은 편백나무와 자작나무의 울창한 숲이다. 머리 위로 잡힐 듯 떠 있는 구름…. 그러나 이 땅은 이미 오래전 중국의 영역이 되었다.

    ‘천지의 물이 그야말로 천지석벽 깊고 깊은 속에 고요히 담겨 파면의 깨끗함이 거울같이 고운데 창고(蒼古)하고 유흑한 외륜산의 천인단애가 화구의 본색대로 사위에 치솟아서 신비 영이한 기색이 저절로 초속적인 신운을 나부끼게 하며 단애에 곧바로 쏘는 태양이 찬란 영롱하게 수면으로 광선을 내려놓아 빠른 바람에 주름져 퍼지는 물결이 가볍게 밀릴수록 천변만화의 색태를 드러내어 장엄 또 수아함이 형용할 수 없다.’


    ▲ 1 지난 2000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자연화산 호수로 기네스북에 오른 천지의 웅장한 모습. 2 천지 표지판. 3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그은 5호 경계비 앞에서 중국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바로 뒤 철창이 북한 땅이다.

    1930년 8월30~9월 3일 조선일보에 실린 안재홍 선생의 ‘백두산등척기’의 일부다. 당시나 지금이나 한민족의 영혼과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천지를 보고 느끼는 감동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백두산 북파에 있는 중국의 천지 안내도에 다음과 같이 설명돼 있다.

    ‘천지는 송화와 투멘, 얄루강의 발원지이며, 중국과 북한 사이에 국경을 가르는 호수다. 해발은 2,189.1m, 표면적은 9.82㎢, 주변 길이는 13.17㎞이다. 평균 수심은 204m이며 최고로 깊은 곳은 373m에 달한다. 총 저장용수량은 20억㎥까지 가능하다. 평균 증발량은 450㎜, 연평균 강수량은 1,333㎜, 연평균 기온은 7.3℃이다. 지난 2000년 가장 높은 고도에 있는 자연 화산 호수로 세계 기네스북에 올랐다.’

    중국 정부가 이 백두산을 최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과거엔 우리 동포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구 관할이었으나 지금은 백두산 휴양특구로 중국 정부에서 직접 관리한다.

    ▲ 1 백두산 녹연담(green deep pond)의 깊은 물이 물빛마저 녹색으로 보이게 한다. 2 백두산 여행에 동행한 송암산악회와 수원 청솔산악회 회원들. 3 백두산 장백폭포. 오른쪽 뒤로 보이는 시멘트 구조물이 천지로 오르는 계단이다. 지금은 낙석이 많아 폐쇄돼 있다. 4 중국에서 운영하는 두만강 유람선.

    연변조선족자치구 관할에서 중앙정부 직접 관리 체제로

    중국도 백두산에 대해 상당한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후금, 즉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 강희제는 1677년 “장백산은 우리 조종의 발상지인데, 아직까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며 무묵남 등 장군 4명에게 기록을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무묵남은 군인 200여 명을 이끌고 원시림의 나무를 베고 길을 내는 대규모 탐험을 했다. 이게 바로 청나라 조정에서 처음으로 백두산을 확인한 공식 기록이다.

    1682년엔 강희제가 길림성으로 직접 가서 백두산에 망제(望祭)를 지냈다. 망제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쪽을 바라보며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이와 같이 청나라 황실에서는 백두산을 단순한 산이 아니고, 청 황실의 발상지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중국 정부는 주변의 국경문제에 대해 이미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파악한 뒤 상당한 비중을 두고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동북공정도 이러한 시각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간 우리 한국인들의 반응은 역설적으로 중국이 백두산을 자국의 영토라 주장할 역사적 증거를 찾도록 자극한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중국은 이미 국내성과 광개토대왕비, 장수왕릉의 장군총 등을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작업을 끝낸 듯하다. 압록강 인근 집안시에 고구려역사박물관을 완전한 중국역사박물관으로 변신시켜 10월 개관을 앞두고 있다. 지난 8월 말 현장에서 이 사실을 확인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계속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면 우리 민족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중국 정부는 이미 백두산을 길림성자치구에서 떼어내 백두산휴양특구로 독립시켰다. 중국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겠다는 의도다. 한국에서 더 이상 백두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미 백두산 개발에 상당한 자본이 들어갔다. 온천도 개발하고, 천지로 오르는 북파·서파 방향으로 도로도 단장했다.

    ▲ 백두산으로 오르는 관광객들이 즐비하다.
    백두산 입장료는 168위안(3만 원)이 조금 넘는다. 백두산 서파에서부터 종주할 땐 우리 돈 20만 원을 내야 한다. 그 외에 백두산에 가기 위해 소요하는 주변 비용까지 합치면 엄청난 돈을 중국에 주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백두산 비즈니스’가 된다고 판단했는지 이미 상당한 투자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급기야 4계절 관광지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8월 28일 중국 관광지 개발사상 최대 규모인 200억 위안(3조7,000억 원)을 2013년까지 추가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백두산과 인근 백산시, 부송현 30㎢ 부지에 대규모 국제컨벤션센터와 특급호텔, 대형 스키장, 골프장, 산림별장촌 등을 동양 최대 규모로 건설하기로 하고 착공식을 가졌다. 투자엔 중국 대련의 만달그룹 등 4개 기업이 참여하기로 했다. 중국은 이 외에도 이미 2006년부터 백두산을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록하도록 추진했고, 2008년 8월에는 장백산 공항을 개설, 항공기 운항을 시작했다.

    이렇듯 백두산 천지가 중국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대처 방법은 무엇일까. 통일이 되거나 남북 교류가 활발해져 우리가 북한 측 백두산 지역을 개발하는 방법뿐인 것 같다.

    ‘가고 가도 여전한 밀림지대이다. 하루쯤으로야 우리의 장원심밀(長遠深密)한 지미(至味)를 다 알겠느냐 하는 듯, 이깔나무의 장림은 여전히 그 끌밋한 맵시와 싱싱한 빛과 삑삑한 숱으로써 사람의 턱 밑에 종주먹을 댄다. 보아라! 조선 1만 년의 천평이 여기에 널려 있다. 1만 년의 풍변운환이 여기저기서 굼실굼실하고 어른어른하고 벌떡벌떡한다.’

    1930년대 후반 매일신보를 통해 발표한 기행문을 모은 <육당 최남선 전집>에 실린 ‘백두산근참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 아름답고, 창랑하고, 한민족의 영혼이 서린 백두산을 우리 땅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까?


    출처 : 松岩 山岳會(송암산악회)
    글쓴이 : 섬나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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