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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산수화의 원본 장가계 여행
    해외산행 및 여행/중국, 일본 2009. 12. 14. 11:02

    산수화의 원본 장가계 여행

     

    問君何事棲碧山 그대에게 묻나니,왜 푸른 산에 사는가.

    笑而不答心自閑 웃고 대답않으니 마음 절로 한가롭네.

    桃花流水杳然去 도화 뜬 물은 묘연히 흘러가니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 인간세상이 아니로다.

     

    이태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에 나오는 별유천지다.도연명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이다.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그림이 무릉도원이다.서울서 서안(西安)으로 날라가는 2시간 동안 나는 선비들의 이상향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생각했다.장가계(張家界)가 바로 '무릉원'이기 때문이다.유토피아의 실재(實在)를 염원하는 '무릉도원'은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꼭 가봐야 할 곳이다.

     

    서안에 착륙하여 웨이팅 시간에 잠시 아방궁(阿房宮)을 둘러보고,   진시왕의 아방궁 삼천분의일로 축소해서 개건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방궁의 진시황상

     

    한시간 비행하여 장가계에 닿았다.  진시왕의 아방궁 삼천분의일로 축소해서 개건

    장지아제에'(張家界)

     

    장가계란 명칭은 한(漢)고조 유방의 오른팔 장자방이 가솔을 데리고 와 살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진나라를 멸망시킨 사람은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 항우고,유방은 항우에게 세번이나 졌다.그러다가 모사(謀士)장량과 대장군 한신을 얻어 천하를 얻은 것이다.이때 장량은 한신에게 '이제 우리 할 일은 끝났으니,초야로 은퇴하자'면서 장가계에 숨었고,한신은 남아있다가 유방에게 죽음을 당했다.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 사냥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죽인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장가계는 우리나라 백두대간 화전민촌이 연상되는 중국의 오지 중 오지다.유방이 장량을 잡으려고해도 오기 힘든 곳이다.시가지엔 택시 대신 삼륜차가 다니고,호리호리하고 키 작은 원주민 토가족(土家族)은,밤에 전기가 아까워 불을 끄고 암흑속에 촛불 켜고 산다.호텔방 전기가 밤에 두번이나 나갔다 들어오는 그런 깡촌이다.

       

    무릉원(武陵源)

     

    이튿날 아침은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년중 200일 비 오고 평균온도는 17도.대밭과 가옥의 파초를 보며 비안개 속에 버스로 무릉원에 도착하니,

    '천원!천원!'

    입구에 토가족 할머니들이 복숭아 석류 군밤 팔고있다.삼사년 전에 한국에 알려진 이후 이곳 관광객 거의가 한국인이라 한국말 한국돈으로 거래한다.거기 많은 복숭아 보니,얼씨구 여기가 무릉도원(武陵桃源) 맞다.

     

    무릉원은 장가계국가산림공원,천자산자연보호구,삭계육풍경구 셋으로 나눠있다.장가계는 남성적이고 계림은 여성적이라,장가계 먼저 보면 계림이 시들해지므로,반드시 계림 먼저 본 후에 장가계 봐야한다고 한다.

     

    보봉호(寶峰湖)

     

    가이드가 마련해준 우의를 입고 450미터 산 속에 있는 보봉호로  가니,안개 속 기암들이 나타난다.죽순처럼 종유석처럼 삐쭉삐죽 하늘을 찌르고 솟은 봉들이 신비롭다.중국인들 그림은 산이 너무 삐쭉하게 높아 과장이 심하다는 느낌을 받지만,그 원본 보니 이해간다.

    '와아!'

    '세상에...'

    사람마다 카메라 꺼내든다.

     

    보봉호(寶峰湖)

     

    비오는 호수가 더욱 운치있다.산과 물 절묘한 산수화 속에 낡은  누선(樓船)은 사람을 싣고간다.

    보봉호는 말 그대로 봉오리 하나하나가 보물(寶物)이다.베트남 하롱베이 바다의 섬같이 기묘한 봉들이 비취빛 호수물에 비치니,유람하는 사람 신선이다.

    배가 지나가는 산허리에 일엽편주 매어놓고 토가족 처녀 하나 요정처럼 앉아있다가 배를 보자 일어나 노래를 불러준다.가날픈 음색이 인간 목소리보다 새소리에 가깝다.하이비스커스 목에 걸고 요염한 허리춤 추던 하와이 민속촌 폴리네시안 처녀들 생각난다.중국 관광객 '아리산도꾸냥' 합창에 화답하여,나도 국산 '소양강 처녀' 한곡조 물결에 띄었다.

     

    황룡동굴(黃龍洞窟)

     

    황룡동굴은 굴 안에 굴이 있고,물이 흘러 800미터는 배 타고 구경하는 환상의 4층 동굴이다.영빈쌍문(迎賓雙門)을 통과하여 배를 타고 가다가 하선하여 자연석으로 다듬은 탐방로 따라가니,10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동굴 속 석순들이 적절한 조명 속에 신비롭다.

    동굴의 하이라이트는 용궁태청(龍宮太淸) 광장의 정해신침이란 높이 19미터의 석순이다.백년에 3미리 정도 자란다는 석순 중간부분이 잘룩했다가 그 위가 다시 굵어 보기 아찔하다.이 석순은 1억위안(元) 보험에 들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자연과 인간을 가장 운치있게 조화시키고 있다.

    보봉호도 사실은 협곡 막아 연출한 인공호라 한다.하산길은 수직절벽에 인공 계단을 달아붙이고,정자까지 만들어,인간이 거대한 산수화 속을 걸어내려오는 착각이 들게한다.

    황룡동굴 안의 수로도 인공이라 한다.그러나 누가 그걸 인공이라 하겠는가.그들은 자연에 인공을 가미해 완벽을 만들었다.유네스코 인류 문화유산인 장가계를 다룬 중국인의 안목을 보면서,'설악산 모노레일과 지리산댐 건설은 무조건 반대요'하는 사람들 생각 좀 해보았다.

     

    십리화랑(十里畵廊)

     

    이튿날 아침은 사람 더 놀래키는 장관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해발 600까지 꼬불길을 차 타고 올라가니,모노레일이 기다리고 있다.그걸 타고 편히 '십리화랑'에 들어가니,좌측 산이란 것이 사람의 어떤 그림보다 산이 더 아름답다는 실증을 보이기 위해 조물주가 특별 제작한 샘풀같다.죽순밭처럼 치솟은 천하기봉(天下奇峰)이 십리 산수화 펼쳤다고 '십리화랑'이다.

     

    내 일찍이 '개자원화보'(芥子園畵譜)에 실린 기암절경을 상상의 그림이지 실젠 없는 것으로 여겨왔던 것이 오산이다.수천척 깍아지른 침봉(針峰) 도립(倒立) 펼쳐진 곳에 안개 서린 그 모습이 실물이던 것이다.

    거기서 디카로 아내 사진 찍으면서 속으로 간절히 빈 것은,'제발 사진이 귀국해서 탈없이 나왔으면' 하는 거였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원가계(原家界)

     

    무릉원에서 가장 웅장한 풍경이 '원가계'란 가이드 설명 들으며 버스로 원가계로 이동했다.

    그러자 여기가 그 어디냐.무릉도원 바로 거기다.

    차창에 비치는 풍경이 완전히 신선의 땅이다.

    해발 1100미터 높이의 바위산들이 도끼로 찍어낸 듯 칼로 져며낸 듯 험준한 침봉 이루어 아득히 흰구름 속에 펼쳐져있다.도원경(桃源境)에 빠진 도연명의 어부(漁夫) 심정 이해된다.

     

     

     

     

                                                                                                                   *

     

     

     

    산수화 기법에는 원래,석벽을 그리는 석벽법(石壁法),고개와 주름을 그리는 파준법(坡 法),흐르는 물이나 폭포를 그리는 유천폭포법(流川瀑布法),물과 구름을 그리는 수운법(水雲法) 등 다양한 기법이 있다.여기 산들은 그 모든 걸 갖추어,필시 산수화 대가인 마원(馬遠)이나 이사훈(李思訓) 왕숙명(王叔明) 등 제가(諸家)가 여기서 배워갔을 것이다.

     

     

    암봉이 얼마나 수직으로 치솟았으면 마지막 326미터를 전망 엘리베타 타고 오르는가.원래 잘생긴 미인은 아래 위 모두 완벽하지만,올라보니 원가계가 그렇다.산 아래도 감동이지만,산 위도 절경이다.

    밑에서 위로 쳐다보는 고원(高原)도 좋지만,산 위에서 내려보는 심원(深遠)도 일품이다.어쩌면 봉만(峰巒)의 상하 형세(形勢)가 그토록 기묘 준수한가. 

     

     

     

     

     

     

    길은 산세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게 암벽 옆을 돌고,절경마다 전망대 있다.'미혼대'(迷魂臺)는 경치에 넋을 뺏긴다고 미혼대고,천하제일교(天下第一橋)는 낭떨어지 위 천하 제일 높은 석교(石橋)라고 천하제일교다.

     

     

     어떤 대(臺)는 작은 사당에 향 피워놓고 소원을 빌고가라 하고,어떤 대(臺)는 난간에 수만개 열쇄 주렁주렁 매달려있어 까닭 물으니,청춘남녀가 여기 열쇄를 채우고 가면 그 사랑은 영원히 풀리지않는다고 설명한다.

     

    천자산(天子山)

     

    장가계 서북쪽의 천자산은 토가족 족장이 자칭 천자(天子)라고 칭한 데서 이름 유래한 곳으로,3천5백개 계단 이어진 정상은 1920년까지 토가족의 고위계층만 오를 수 있는 신성한 곳이었다고 한다.

    버스로 이동해가며 본 운무 속의 산봉우리들은 바다 위 섬 같고,해발 2084미터 정상에 서보니,천군만마 호령하듯 안하(眼下)의 풍경 웅장하다.



     

    무릉원은 원래 3억8천만년 전에 해저에서 솟아올라 억만년의 침수 붕괴로 협곡과 수려한 봉우리로 변한 것이다.금강산 설악산 수십개 합친 광대한 규모인데,위가 평평한 것은 미국 그랜드캐니언 비슷하나,기암절경에 운무 낀 모습은 모래와 돌로 이뤄진 죽은 그랜드캐니언 풍경보담 웃길인거 같다.

    왜 우리 바다는 이런 명품 하나 솟구쳐올리지 않는지?

     

    전망대는 어필봉(御筆峰),선녀산화(仙女散花) 등 기암을 보려는 사람들로 붐비고,하룡(賀龍)장군 동상 옆에 영지버섯 수정 나무뿌리 공예품을 파는 기념품점과,토가족 복장으로 돈 받고 기념사진 찍는 원주민 처녀가 있다.

     

     

     

    내려오는 케이불카는 6인용 37대가 금방금방 연결되어 설악산처럼 기다릴 필요가 없다.거대한 암봉을 스칠듯,낙락장송에 부딪힐듯,스릴있게 작은 케이불카 코스를 설계해놓았다.

     

    '시안'(西安) 

     

    아침 비행기로 내린 서안은 비가 내린다.국제공항 함양서 서안 가는 관중평야 그 넓은 옥수수밭이 가을비에 젖고 있다. 

    '모처럼 왔는데,비 때문에 관광이 좀 그렇겠다.' 

    '그렇지도 않다.저 들판 비안개 속에 관운장이 적토마 위에 높이 앉아 청룡언월도 치켜들고 달리는 모습 봐라.그 뒤 현덕을 호위한 장비의 호랑이 수염과 날카로운 장팔사모도 보인다.' 

     

    여기가 어디냐?관중평야 아니냐?시황제 정(政)이 천하통일하고 분서갱유(焚書坑儒) 만리장성 축성을 결정한 도읍지고,흐르는 위수(胃水)에서 낚시하시며 때를 기다리던 우리 동이족(東夷族) 강태공 여상(呂尙)께서 문왕을 만나 폭군 주왕(紂王)을 몰아내신 곳이고,항우와 유방이 자웅을 겨룬 곳이고,현종 양귀비의 로맨스가 꽃 핀 장소며,이태백 두보 도연명 등 성당(盛唐) 천하문장이 부침한 곳이다.돌맹이 하나도 유적이다. 

     

    천년 13왕조의 도읍지 서안은 그 역사의 깊이와 폭이 로마나 아테네보다 깊다.유수한 세계 4대 고도(古都)의 하나다.그러나 실크로드의 출발지 서안의 현주소는 스산하기 짝이 없다.60년대 구로공단 모습이다.훵한 아스팔트길 옆에 자전거포 이발소 간판 보인다. 

    평균 월급이 1000원(元),한화로 15만원이고,30평아파트 임대료가 600원(元)이란다.'촌년이 아전서방을 하면 갈지 자 걸음 걷고,육계장 아니면 밥을 안먹는다.'는 식으로 한국인이 지금 여기서 거드럼 피우는 건 돈 때문이다. 

     

    성곽 남문가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고 '비림'(婢林)에 가서 왕유 왕희지 안진경 구양순의 친필 비석도 보고,책으로 엮은 탑본(榻本)들도 구경했다. 

    서도하면서 누구나 써보는 왕휘지의 글씨,'난정기'(蘭亭記)를 탐내다가,공자님 상반신 탑본을 발견해 260원(元) 호가하는걸 구슬려 30원(元)에 샀다. 

     

    양귀비 당현종의 로맨스로 유명한 여산(驪山) 화청지(華淸池) 온천에서,양귀비가 목욕한 해당탕(海棠湯) 구경하고 40도 온천물에 손도 씻어보고,양귀비가 즐겨먹은 달콤한 석류도 맛보았다. 

    귀비는 안록산 난중에 자결하여 서안 70K에 묻었는데,무덤흙을 얼굴에 바르면 미인이 된다는 속설 때문에 관광객이 하도 흙을 파가는 바람에 지금은 돌로 덮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진시황의 병마용 내부를 구경했다.황릉 주변 수킬로에 걸쳐 지하를 파고,내부에 망루와 실물대의 문무백관 토용을 묻었다고 한다. 

    병마용은 매년 죄수 70만명을 동원하여 40년간 만들었다는데,보물을 묻고 도굴 방지를 위해 자동으로 발사되는 활을 장치하고,능을 만든 장인들과 자식 못낳은 후궁들을 묻어버린 끔찍한 지하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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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 무슨 큰 구경거리 났는가.부산하게 무덤 속을 다니는 시간에 나는 벤치에 앉아 달콤한 석류를 먹으며 백락천의 '장한가'(長恨歌) 한구절을 음미했다. 

     

    雲 花顔金步搖 구름같은 귀밑머리,꽃같은 얼굴,머리의 금비녀는 걸음마다  

                          흔들리고 

    芙蓉帳暖度春宵 부용무뉘 방장 드리운 따뜻한 방에서 봄밤을 보내었네. 

     

    출처 : 김현거사
    글쓴이 : 김현거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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