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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초의 우표와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
    우정사업 홍보/우표는 내친구 2013. 8. 7. 17:33

     

    우표가 없었을 때는 어떻게 편지를 보냈을까?

     

    세상에 우표가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언제일까요?

    1840년.... 우표가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7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우표가 등장하기 아주 오래전부터 우편의 왕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표가 없었던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이 편지를 부치는 사람이 아닌 편지를 받는 사람이 현금으로 우편 요금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우편은 오늘날의 기차 요금처럼 배달되는 거리에 따라 요금이 달랐습니다. 또한 편지의 무게와 장수에 따라 요금이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에 우체부가 편지를 전해 줄 때 개봉하여 그 자리에서 우편 요금을 계산하는 복잡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언제 편지를 보내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요금을 낼 돈이 없을 때에는 부득이 우편물을 되돌려 주고 다시 와 달라고 사정을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돈이 없어서 기다리던 편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일반 국민은 비싼 요금 때문에 우편을 이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여 우편제도는 사실상 널리 이용되지 못하였습니다.

      

    세계 최초의 우표는?

     

    불편하고 또 서민들은 이용하기 조차 어려웠던 '우편 제도에 대한 개혁안'을 연구하여 제의한 사람은 영국의 교육자이자 세금 개혁가인 로랜드 힐(후에 로랜드 힐 경이 됨)이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우표 창시자 로랜드 힐 경, Sir Rowland Hill (1795 - 1879)

     

    그는 1836년 12월 「우체국의 개혁 그 중요성 Post office : Its Importance and Practicability」이란 논문에서 우편 요금의 지급 방법으로 우체국에서 판매하는 우표를 붙이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여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그 후, 3년이란 긴 논쟁 끝에 하원과 상원에서 통과되어 드디어 1839년 8월 17일 빅토리아 여왕의 재가를 얻은 뒤, 다음 해인 1840년에 역사적인 균일 우편요금 제도가 드디어 영국에서 시행되게 됩니다.

    (세계 최초의 우표 1페니와 2펜스)

     

    이 개혁안에 따라 요금 선급 방법으로 우표가 창안되었고, 1840년 5월 6일 오랜 노력 끝에 빅토리아 여왕의 옆모습을 그린 1페니와 2펜스로 된 2종의 우표가 세계 최초로 발행되었습니다. 수집가들은 이 우표를 색깔에 따라 페니 블랙(Penny Black), 펜스 블루(Pence Blue)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발행된 세계 최초 우표는 1페니(1 Penny)의 흑색 우표와 2펜스(2 Pence)의 청색 우표 두 종류로 전지는 240장으로 구성 되었으며, 우표인면 하단의 양쪽 귀퉁이 안에 알파벳 문자를 각각 다르게 넣었습니다. 또 변지에는 판 번호와 각종 문자를 넣었기 때문에 문자와 기호에 따라 우표 한 장 한 장 마다 평가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 '문위우표'를 아시나요?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국 '우정총국', 초대 우정총판 홍영식)

     

    우리나라 근대 우편 제도의 아버지로 불리는 홍영식(洪英植)을 중심으로 한 신진개혁파 정치 지도자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1884년 11월 18일(음력 10월 1일) 우정총국이 역사적인 업무를 개시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인 '문위우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 문위우표 (5문, 10문/ 1884. 11. 18)

     

    문위우표는 이때 발행된 우표의 액면이 당시의 화폐 단위인 ‘문(文)’이었기 때문에 수집가들 사이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정총국이 폐쇄될 때까지 도착하지 않아 사용하지 못한 우표 3종)

     

    (우리나라 최초의 일부인, 한성우체사와 인천우체사 일부인)

     

    우리 정부에서 5종의 우표 인쇄를 일본 대장성인쇄국에 의뢰하고, 우정총국의 개국과 동시에 우표를 발매할 예정이었으나, 우정총국 개국일까지 5문과 10문 2종만 도착해 한성(서울)과 인천 간에 운송된 우편물에 사용되었을 뿐, 나머지 25문과 50문, 100문의 3종은 같은 해 12월 4일 발발한 갑신정변의 실패로 우정총국이 폐쇄될 때까지 현품이 도착하지 않아 미 발행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태극 보통우표, 1995. 7. 22)

    그 뒤 십여 년 동안 이렇다할 체계적인 근대우편제도가 없었던 우리나라에는 일본과 청국의 무분별한 우편사업이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에 고종황제는 통신권을 되찾고 중단되었던 우정사업의 재개를 위하여 1893년부터 기관과 제도를 정비하였고 1895년 우편사업을 재개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새롭게 사용할 우표를 미국의 ‘앤드류 비 그레함’ 조폐창(Andrew B. Graham Bank notes, U.S.A )에 의뢰하여 만들었으며 이때 만들어진 우표가 태극보통우표입니다. 총 5푼, 1돈, 25푼, 50푼 액면의 4종을 두 번에 걸쳐 인쇄하였고 첫 인쇄(초판)한 우표의 발행일은 1895년 7월 22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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