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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향 울릉도 태하동 황토구미 마을
    산행 과 여행/내고향 울릉도,독도 2008. 8. 15. 14:02

     

    http://hwangtogumi.invil.org

    우리동네 소개 카페 : 정보화마을 선정된것 소개함

     

     

     

     

     

     

     

     

     

     

     

     

     

     

     

     

     

     

     

     

     

     

     

     

     

     

     

     

     

     

     

     

     

     

     

     

     

     

     

     

     

     

     

     

     

     

     

     

     

     

     

     

     

     

     

     

     

     

     

     

     

     

     

     

     

     

     

     

     

     

     

     

     

     

     

     

     

     

     

     

     

     

     

     

     

     

     

     

     

     

     

     

     

     

     

     

    우리마을 관광지

     

    성하신당

    조선 태종시(1417년) 삼척인 김인우를 울릉도 안무사(按撫使)로 명하여 울릉도 거주민의 쇄환(刷還)을 위하여 병선 2척을 이끌고

    이곳 태하동에 도착하여 이곳을 유숙지로 하고 도내 전선(全船)에 대한 순찰을 마치고 내일이면 출발 귀임(歸任)할 작정으로 취침 중

    이상하리만치 기이한 꿈을 꾸었던 것이다.

    해신이 현몽하여 일행 중 남녀 2명(童男童女)을 이 섬에 남겨두고 가라는 계시가 있어서 안무사는 의아스럽게 생각했으나

    별로 그 일에 대해서 관심이나 구애됨이 없이 다음날 출항할 것을 결심하고 날이 밝아짐을 기다리는 중 예기하지 않던 풍파가 돌발하여

    출발을 중지하고 풍파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바람은 멎을 기세 없이 점점 심해 가기만 하였다.

     

    수일간은 이렇게 기다리던 중, 안무사는 문득 전일의 현몽이 생각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일행 전원을 모아놓고, 동남동녀 2명에게,

    일행이 유숙하던 곳(가옥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니 유숙하던 장소로 추측됨)에 필묵을 잊고 왔으니 찾아올 것을 명하였다.
    아무 것도 모르는 둘은 발길을 재촉하여 총총히 밀림사이로 사라지자 그렇게 심하던 풍랑은 거짓말처럼 멎어지고 항해에 적당한 바람만이

    불어오는 것이었다. 안무사는 결국 일행을 재촉하여 급히 출항할 것을 명하니 배는 순풍을 받고 일시에 포구를 멀리하게 되었다.
    이 무렵 속은 줄도 모르는 어린 남녀는 아무리 찾아도 필묵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냥 해변으로 돌아와 보니 배는 벌써 수백리 해상에서

    쾌조로운 순풍을 타고 육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이 두 동남동녀의 심경은 오죽했으랴? 땅을 구르며 고함을 쳤으나 배는 어느 듯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원망스러워 울부짖던 두 어린 남녀는 이제는 지쳐 어쩔 수 없이 본래 유숙하던 자리로 돌아왔으나, 날이 감에 따라 공포와 추위,

    그리고 굶주림에 시달리다 결국은 죽어갔을 것이다.
    한편 안무사는 무사히 본국으로 귀착하여 울릉도 현황을 복명하였으나 당시 연민의 정과 죄의식이 마음 한구석에서 떠날 날이 없었다.

    그러다 수년 후 재차 울릉도 안무(按撫)의 명을 받고 입도(入島)하여 혹시나 하는 기대에 태하동에 상륙하여 수색을 하였던 바

    전년에 유숙하던 그 자리에 두 동남동녀가 꼭 껴안은 형상으로 백골화(白骨化)되어 있었던 것이다.
    안무사는 이 정황을 보고 회한에 찼으나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
    그래서 혼령을 달래고 애도하기 위해 그 곳에다 간단한 신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고 귀임하였다.

    그 후 매년 음력 2월 28일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농작이나 어업의 풍년도 소원하고 위험한 해상작업의 안전도 빌었다.

    그리고 신조 선박의 진수(새로 만든 배을 처음으로 물에 띄움)가 있으면 꼭 태하의 성하신당(성황당)에 제사하여

    해상작업의 무사안전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한다.

     

     

    태하대풍령 낚시터

     

    서면 태하와 북면 현포 사이의 경계에 바람을 기다린다는 이름의 대풍령이 있다.

    이곳은 향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이곳 사람들은 "상나무재"라고 부른다. 대풍령은 사실 이 재의 해안쪽 절벽을 가리킨다.

    절벽 위의 평지에는 유인등대가 있어 뱃길을 안내하고 있으며 절벽 아래로 수심 수백미터의 바다가 바로 이어져 있다.
    이곳의 절벽에는 홍합이 많이 자라고 있으며 군데군데 해식작용에 의한 해안동굴들이 있다.

     

    대풍령을 바라보면 절벽 꼭대기의 군데군데에 구멍이 나 있는데 그 크기는 수십미터 이내의 큰 구멍이지만 통큰 옛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를 들어보면 옛날부터 배가 많이 드나들었는데 이 배를 메어두기 위해 이곳에 구멍을 뚫어 배를 메었고 또 돛단배이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야 하고 그 바람을 기다린다고 해서 대풍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유래는 태하동에 있는 성하신당의 전설과 관련지어 볼 수 있다. 조선 태종때 이곳에 들른 안무사 김인우가 사람들을 실고

    출항하려 할 때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아서 출발을 못하고 있었는데 꿈에 산신령이 일러준대로 하니까 순풍이 불어 나올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대풍령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

    또 하나의 이야기는 초봉산 너머 진등대라는 곳에 큰 수직동굴이 있는데 여기에 빠진 염소가 대풍령 바닷가에 나타났다고 하여

    아마 땅속으로 수km의 지하동굴이 있지 않을까 한다.
    아무도 그 무서운 동굴 아래로 내려가본 사람이 없어 소문으로만 그치고 있다.


    주 대상 어종: 벵에돔, 돌돔, 혹돔, 우럭, 방어

    포인트 진입 방법
    거 리: 20Km(도동 출발기준)
    진입방법 : 선박
    소요시간 : 45분(태하에서 출발시 10분)

    포인트 소개
    수심 15~ 30m, 울릉도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포인트이며 모든 대상어가 마릿수는 적으나 초대형급들로만 잡힌다.

    가재굴

    황토굴과 대풍령 사이에 있는 길이 50m폭 8m인 자연동굴로써, 그 옛날 바다 가재들이 많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천정에는 지금도 조그마한 석순들이 자라나고 있어 여러 가지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동굴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곳까지 가려면 황토굴을 지나 일반 추 낚시터를 통과하여 약 10분 정도 도보로 갈 수 있는 곳이라

    여름에는 굉장히 시원하여 지역민들이 수영을 하다 햇볕이 따가우면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 오기도 하는 곳이다.
    주변 낚시터와 연결이 용이하여 많은 볼거리를 제공할 여지가 많은 곳이다. 

     

    태하황토굴


    황토굴에 많은 양의 황토가 있어 황토구미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의 황토가 나라에 상납까지 되었다고 하며 조정에서는 3년에 한번씩 삼척영감을

    이 섬에 순찰을 보냈는데, 순찰의 증거품으로 이곳 황토와 향나무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기념촬영을 하는 등 중요한 관광코스중의 하나로 각광받고 있다.


    대풍령향나무자생지

    옛날 배가 드나들 때 배를 메어두기 위해 이곳에 구멍을 뚫어 배를 매었고,

    돛단배이기 때문에 항해를 위해서는 바람이 불어야 하고 그 바람을 기다리는 곳이라 하여

    기다릴 대(待)자를 써서 待風嶺으로 명명하였다.

    옛날 어른들의 구전에 의하면 이곳에 산불이 발생했는데 불에타는 향나무향기가

    일본의 가까운 지방까지 도착했다고 한다.

    현재 천연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된 대풍령 향나무 자생지는 바닷가 가파른 절벽이며 심한 해풍의 영향으로

    향나무들은 수고성장이 빠르지 않으며 이곳에는 향나무가 집단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오랜 세월동안 다른집단과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향나무의 원종이 이곳에 그대로 남아 있어

    학술적 가치또한 높으며 향나무 마다 갖가지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으며 괭이갈매기들의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이규원 사적비

    고종(高宗) 19년(1882년) 4월 7일 왕에게 명을 받은 감찰사(儉察使) 이규원(李奎遠)은

    중추도사(中樞都使) 심선완(沈宣琬), 군관출신(軍官出身) 서상학(徐相鶴), 전수문장(前守門將)

    고종팔(高宗八), 착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 유연우(劉淵祐), 기타역원소격(其他役員沙格) 등 82명,

    포수(砲手) 20명 등 100여명을 이끌고 울릉도로 향하게 된다.

    고종(高宗) 19년(1882년) 4월 10일에 육로를 통해 원주(原州) - 평해(平海) - 구산포(丘山浦)에

     4월 27일 도착하였다. 구산포는 평해읍에서 약 십리가 되는 곳이며 여기서 항해준비를 하고

    순풍을 기다리다 출발하여 4월 30일 아침 8시경이 되어 울릉도 서쪽 해변 소황토구미(小黃土邱尾),

    지금의 학포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 후 이규원 검찰사는 육로를 통하여 대황토구미(大黃土邱尾,태하)를 거쳐 흑작지(黑斫支, 현포),

    나리동(羅里洞)등을 거쳐 울릉도를 관찰하게 된다.

    그러던 중 5월 8일 소황토구미에서 휴식하며 석수(石手)를 시켜 섬이름과 성명을 황토구미와

    통구미의 바위에 새기게 하였다.

    육로를 통한 관찰이 끝난 후 배를 타고 노를저어 5월 9일 부터 10일까지 이틀간

    향목구미포(香木邱尾浦)와 대황토구미를 지나 대풍포(待風浦, 대풍령), 현작지(玄斫支, 현포),

    죽암(竹岩, 대바우)를 거쳐 선판구미(船板邱尾, 선창)에 도달해 다시 도항(島項, 섬목),

    (竹島, 댓섬), 도방청포구(道方廳浦口, 도동), 죽포(竹浦, 도동과 저동사이의 행남)등을

    둘러보았다고 한다.

    5월 11일 산신에게 제사하고 삼수종(三水宗)을 지나 5월 13일 석양에 울진군 지역으로

    직항했으나 파도로 인해 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노를 저어 근근이 평해 구산포에 당도 상륙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개척령이 떨어지면서 강원도와 경상도의 경주, 영일군 인근 사람들이 많이 가서

    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규원사적비(임오명 각석문)는  지금의 태하바닷가 마을에서 150m정도 안쪽에 위치해 있다.

     미륵산

    미륵이 누워있는 형상을 갖고 있는 곳이라 하여 미륵산 이라고 붙여진 산으로써 여러 가지 전설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나 이산입구에 위치한 수직 동굴은 깊이를 알 수 없으며 그 옛날 큰 황소가 그 곳에 빠졌는데 그 뼈가 가재굴로

    나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안개낀 날이면 큰이묵이가 동굴입구에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흰 연기를 내뿜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미륵산은 해발 900m로 완만한 경사면을 이루고 있어 등산하기에는 쉬우며 태하마을-서달마을을 거쳐

    미륵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소요시간은 왕복 4시간 정도 소요가 되며,

    특별한 등산로는 없으므로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산행하는게 안전하다.

    또한 미륵산 정상에 오르면 울릉도 최고의 성인봉, 나리분지, 알봉, 코끼리바위, 말잔등 등을 구경 할 수 있으며

    특히 여기서 바라본 가을 단풍은 내장산 단풍보다 더 뛰어나다고 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으며,

    가을철 야간 산행시 미륵산 중턱에서 바라보는 동해안 석양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지 않은 분들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너도밤나무군락지

    태하령에 위치한 천연기념물 제50호로 지정된 섬잣나무와 너도 밤나무 군락지는 오래된 고사목과

    아름드리 섬잣나무는 많은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밤알이 작아 너도 밤나무냐! 라고 붙여진 활엽수인 너도 밤나무와

    주변의 많은 단풍나무로 어울러져 많은 볼 꺼리를 제공하고 산림욕 장소로도 많이 알려진 곳이다.

    특히나 도로경사가 굉장히 심해 곡예 운전 장소로도 유명하고 많은 연인들의 테이트 장소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이곳을 둘러 본다면 태하마을에서 정상까지 도보로 약 50분정도 소요되며 고개를 내려가면 구암마을에 도착 할 수 있다.

    태하등대

     

    황토굴 위쪽의 산길을 따라 40분 정도 부지런히 걸어 올라가면 울릉도항로표지관리소(태하등대)에 갈수 있다.

    등대 가는 길에는 50년 이상되는 해송(海松)나무 숲, 해국(海菊)이 길가에 있는데 특히 해국이 필 때면

    그꽃에 매료되어 쉬어가지 않고는 등대에 오를 수가 없다.

     

    태하등대는 유인등대로서 표고는 111m이고, 광파표지(18마일), 음파표지, 전파표지(100해리)시설을 갖추고 있다.

    등대 앞에서 바라본 현포해안의 절경과 대풍령 해안절벽은 자연경관이 매우 뛰어나며 대풍령 해안절벽에 자생하는 향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9호 대풍감 향나무자생지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오징어잡이 성수기때의 야경과 일몰은 정말 장관이다.

    ※ 연락처: 태하등대(054)791-5334

    학포만물상

    융화된 화산암으로 되어있는 만물상은 보는 위치마다 변하는 모양이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저녁노을

    무렵 경치가 특히나 아름답다.

    만물상은 육상에서 보는 것보다 유람선이나 기타 교통편을 이용하여 해상에서 만물상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며,
    괭이갈매기의 부화철에는 수많은 갈매기들의 울음소리로 야간에 잠을 못잘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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