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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대 인종 : 고양덕양 서삼릉(효릉)
    산행 과 여행/국보, 고궁, 왕릉 탐방 2009. 9. 15. 11:57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가장 짧은 재위기간이었던 임금은 누구게?

    아이들은 거의 단종(端宗)이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야? 이렇게 물으면...

    단종의 단이 짧을 단(短)이잖아요? 이렇게 대답하는 아이들.

    단종 역시 치세가 길지는 않았다. 3년 정도의 치세기간,

    정확하게는 3년 2개월의 치세기간(재위기간은 1452년 5월부터 1455년 윤6월까지)이었으니

    결코 길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짧을 단으로 오해를 받을 만큼의 짧은 치세기간을 자랑(?)하는 임금보다도

    훨씬 더 짧은기간동안 왕위에 머물렀던 임금이 있었다. 바로 조선의 12대 임금 인종(仁宗)이었다.

    인종의 재위기간은 1544년 11월부터 1545년 7월로 보통 8개월이라고 하지만,

    윤정월을 포함하면 9개월 임금이다.

    인종은 중종과 장경왕후 윤씨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다. 태어난 연도순으로 따지자면 결코

    장남이 될 수는 없지만, 조선은 유교사회였다. 측실의 배를 빌어 태어난 아들은 결코 장남이 될 수 없었다.

    왕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종의 어머니 장경왕후는 그를 낳자마자 일주일만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인종은 계모인 문정왕후 윤씨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야했다.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계모는 나쁜 엄마란 공식이 떠나지 않는다. 특히 왕위를 누가 계승하느냐에 관한 문제라면

    계모는 더욱 나쁜 엄마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전인화와 강수연을 연기대상을 타도록 해준 여인천하에서 보여주는 문정왕후는

    초반에는 어린 세자(인종)을 보호하려는 인물로 그려졌는데,

    후반에서는 자신의 배에서 태어난 아들 경원대군(명종)을 즉위시키기 위해 세자에게 해를

    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 문정왕후이다. 경빈박씨를 내쫓을 요량으로 중종의 맏사위

    김희를 사주하여 작서(灼鼠)의 변(變)을 일으켰는데, 야사에서는 경빈박씨가 아닌 세자를

    죽일 생각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즉위해서도 문정왕후의 욕심은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효자였던 인종은 새어머니가

    자신을 구박함에도 불구하고 문안인사를 잊지 않았는데 "언제 경원대군과 자신을 죽일 것이냐"고

    악담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종은 자신의 효성이 부족하다면서 죄책감에 시달렸고,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자식을 두지 않았다.

    인종이 어느날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되었는데,

    이는 문정왕후가 독이 뜬 떡을 대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안인사를 위해 대비전을 찾아갔는데,

    처음으로 반색하면서 인종에게 떡을 대접했고, 새어머니가 자신을 반기는 것이 반가와서

    그 떡을 먹고는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문정왕후가 인종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알려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문정왕후가 극악한 반면, 인종은 너무도 선량했다.

    참고로, 인종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효릉(孝陵)에 묻혔는데, 지극정성인 효자라는 의미에서

    능도 효도 효(孝)를 붙였다고 한다.

    인종의 치세기간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대윤이니 소윤이니 이런 말도 없었을 것이고

    명종시대의 을사사화나 정미사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역사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존재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말을 사용해본다.

    인종이 오래도록 살아있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그렇게 된다면... 후에 일어날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역사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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