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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순종 : 남양주 유릉
    산행 과 여행/국보, 고궁, 왕릉 탐방 2009. 9. 15. 14:38
    조선 마지막 임금 '순종'(1874.2.8~1926.4.25)의 묘.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소재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순종
     
    1874년(고종11년) 2월 8일에 창덕궁 관물헌에서 고종과 명성황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척, 자는 군방(君邦), 호는 정헌(正軒)
     
    순종은 1875년 2월 18일 왕세자로, 1897년(광무1년)에는 대한제국의 성립에 의해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1907년 7월 19일부터는 일제의 강요로 황위에서 물러난 고종황제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다가
    8월 27일에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를 융희(隆熙)로 하였으며, 황제(皇弟)인 영친왕을 황태자로 책봉하였다.
    순종은 즉위한 직후인 1907년 7월에 일본에 의해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이 강제로 성립되면서
     국정 전반에 일본인 통감이 간섭하게 되는 등 일본에 내정이 간섭되게 되었고 군대를 해산당하여
    자위권을 빼앗겼다. 1909년(융희3년) 7월에 이르러서는 기유각서의 체결로 사법권마저 강탈당해
    순종은 이름만 황제인 상황에서 조선의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갈 수가 없었다.
    이완용 등 친일대신들에 의해 일본인 통감 데라우치를 통해 일본이 제시한 한일합방조약이
    8월 22일의 어전회의에서 조인되고 8월 29일에 옥새가 찍힘으로서 순조는 망국의 군주가 되었다.
    순조는 조선이 망하고 창덕궁 이왕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 거처하다가
    1926년 4월 25일에 53세의 나이로 붕어하여 유릉에 안장되었다.
     
     
      * 유릉 : 조선 마지막왕 27대 순종황제(1874~1926)와 그의비 순명효황후 민씨(1872~1904)와

                     계비 순정효황후 윤씨(1894~1966) 합장묘

                     - 재위기간 : 1907~1910

     

     유릉은 순종과 동비 순명효왕후, 동계비 순정효황후의 무덤이다.
    조선왕조 무덤 중 한 봉우리에 3개의 방을 만든 동봉삼실릉은 유릉 뿐이다.
    12면의 면석에 꽃무늬를 새긴 병풍석과 12칸의 난간석을 세웠다.
    무덤 아래에는 침전이 정자각을 대신하였으며 그 아래 문·무인석, 기린, 코끼리, 사자상 등을 배치하였다.
     홍릉과 유릉은 철종 이전의 무덤과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종을 황제로 칭하게 됨으로 제릉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서 석물의 규모나 종류가 달라졌으며, 임금의 침실, 제사지내는 방의 위치가 달라졌다.
    2개의 무덤을 하나로 묶기위해 외곽으로 담장을 설치하였으며, 양릉 중간에 돌로 만든 연못을 두었다.
     
    순종
     
    고종 11년(1874) 2월 28일에 고종의 둘째 아들로 창덕궁에서 태어났다.
    광무 원년(1897)에 황태자가 되었고 광무 11년(1907) 7월에 고종의 뒤를 이어 창덕궁에서 황제 위에 올랐다.
    황제 위에 오른 후 연호를 융희라 정하고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로 잡으려 하였으나
    재위 4년 만인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다.
    이후 순종은 단지 이(李)왕으로 불렸고 1926년 4월 25일 53세로 창덕궁에서 돌아가셨다.
     
    황후
     
    순명효왕후 민씨는 여은부원군 민태호의 딸로 고종 19년(1882)에 세자빈이 되었고
    광무원녀(1897) 황태자비로 되었으나 순종이 즉위하기 전인 광무 8년(1904) 11월에 33세로 돌아가셨다.
     
    계후
     
    순정효황후는 해풍부원군 윤택영의 딸로 광무 10년(1906) 12세의 나이로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그 다음해 순종이 황제 위에 오르자 황후가 되었다.
    1910년 일제가 국권을 빼앗으려 조약 체결을 서두르자 황후가 옥새를 치마 속에 감췄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1966년 1월 13일 72세로 창덕궁 낙선재에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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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년의 유릉 모습. 사진 맨 왼쪽에 주한외국인들의 자녀들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좌우로 늘어선 기린,
    낙타 코끼리 등 동물상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사진 아래)현재의 유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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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1959년)에 비해 숲이 많이 울창해지고 관리가 잘되고 있는 듯 잔디도 푸르다.
    중간에 있는 건물이 재실, 붉게 칠을 한 기둥이 홍살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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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릉 앞의 장식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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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 창문을 통해 릉이 보인다

     

     홍릉과 유릉사이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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