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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성곽 둘레길
    산행 과 여행/국보, 고궁, 왕릉 탐방 2009. 10. 6. 17:57
    [서울 성곽 둘레길] 한양 600년 역사의 숨결을 느낀다
    내사산 20㎞ 걸어 역사문화탐방로로 한창 조성

    600여 년 전 서울 성곽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누가, 왜 축성했으며, 무너지고 없어진 구간은 또 언제, 왜 그렇게 됐을까? 아마 성곽을 따라 도심을 걸으며 서울 성곽의 역사를 한눈에 느껴보는 날도 머지않을 것 같다.

    서울시에서 지난 6월부터 서울 내사산(內四山) 역사문화탐방로를 본격적으로 조성하기 시작했다. 숭례문(남대문)~돈의문터(서대문)~인왕산~창의문~북악산~숙정문(북문)~낙산~흥인지문(동대문)~광희문~남산을 거쳐 다시 숭례문으로 돌아오는 서울 성곽 18.2㎞(도상거리) 트레킹 코스를 2011년까지 완공키로 했다. 등산로 12㎞와 그린웨이 8㎞로 소요시간은 약 13시간으로 예상하고 있다.


    ▲ 북악산 끝자락 와룡공원 꼭대기에서 혜화동과 낙산 방면으로 이어져 있는 서울 성곽을 바라봤다.
    기존 성곽 코스는 그대로 사용하고 없어진 구간은 가급적 최대한 원형대로 복원할 방침이다. 이미 복원된 구간 10.4㎞와 성곽의 일부가 남아 있어 복원이 가능한 구간 2.5㎞ 등은 걷는 코스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소실되어 복원이 불가능한 구간 5.1㎞는 서울 성곽이라는 표시를 할 예정이다. 북악산을 완전개방한 지 꼭 4년 만에 600년 전 서울 성곽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서울 성곽은 국보1호인 숭례문(남대문)과 보물1호인 흥인지문(동대문) 등 각종 국보와 보물 등 유적과 문화재로 둘러싸인 역사문화탐방로다. 숭례문에서 서울 성곽, 즉 서울 내사산 트레킹 코스를 따라 걸었다. 서울 성곽 코스는 옛 한양의 문화와 역사를 그대로 느끼며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가장 좋은 길이다. 지금은 성곽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안내판도 없는 코스가 많지만 서울시가 코스별로 한창 정비 중이다.

    소멸된 성곽은 최대한 원형대로 복원

    서울시청 문화재담당 곽석권씨는 숭례문에서 출발, 원래의 길보다 통행이 수월한 태평로와 정동극장 앞으로 우회한다고 했다. 서울시에서 소개한 코스는 숭례문~태평로~삼성서울병원(돈의문터)~사직터널~인왕산~창의문~북악산~숙정문~와룡공원~서울과학고 앞 경신고 뒷담 골목~혜화문~가톨릭대 낙산방향~성곽 따라 동대문~광희문~장충체육관 위 성곽 따라~신라호텔~타워호텔~장충단고개~남산~성곽 탐방로~N타워~식물원~백범광장~숭례문으로 회귀한다. 이대로 따라가 보기로 했다.

    ▲ (위)남산에 있는 서울 성곽을 따라 난 길로 탐방객이 내려가고 있다. (아래)서울 성벽이 인왕산 능선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출발했다. 사적 제124호로 지정된 덕수궁이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 경희궁 등 왕궁이 전소되자 왕족의 집 중에서 가장 큰 덕수궁에서 선조가 기거한 곳이다. 선조가 서거한 뒤 광해군이 이곳에서 왕위에 올랐다. 그 돌담길을 따라 걸었다. 돌담길은 역사의 유적이라기보다는 연인들의 운치 있는 데이트 코스로 더 이름났던 적도 있었다.

    횡단보도를 지나 삼성서울병원 앞에 도착했다. 서대문은 온데간데없고, 있었다는 이정표만 보일 듯 말 듯 병원 앞에 붙어 있다. 서울교육청을 지나 사직터널 쪽으로 향했다. 사직공원을 스쳐 지나갔다. 인왕산(338m) 들머리이기도 하며 서울의 역사와 함께 해온 곳이다. 인왕산은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와 함께 도읍을 정할 때 우백호로 삼았던 산이다.

    사직공원 뒤에는 황학정이 있다. 조선시대 궁술을 연습하던 터였다. 경희궁 안에 있던 시설을 일제강점기에 이곳으로 옮겼다. 숲으로 둘러싸여 가까스로 보였다. 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호랑이굴과 범바위 방향으로는 지금 한창 보수공사 중이라 연말까지 출입이 통제된 상태다. 기존 등산로를 따라 갔다.

    ▲ 인왕산에서 청운동으로 내려가면서 성곽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탐방객.
    이윽고 능선에 올랐다. 남쪽으로 성곽을 보수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도 한때는 군사통제구역으로 출입이 금지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인 1993년 일반에 출입이 허용됐다.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오르는데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젊은 남녀 한 쌍이 산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웬일일까?

    “무슨 생각으로 산에서 낚싯대를 들고 있어요?”

    “산에서 낚시하면 무슨 생각이 들까 싶어 이러고 있습니다.”

    “그래, 무슨 생각이 들고, 뭘 낚았어요?”

    “많은 생각이 듭니다. 아저씨가 한번 낚여 볼래요?”

    시각디자인과 대학생들의 창의적 수업과정 중 과제수행이라고 했다. 신선한 감각으로 와 닿았지만 낚이고 싶지는 않았다. 많은 걸 낚아 보라 전하고 뒤돌아섰다.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은 사방이 확 트여 서울 전체 조망이 가능했다. 능선 바로 옆으로 거무스름하게 이끼 낀 섬돌들이 여기저기 보여 오랜 역사를 대변하는 듯했다.

    이제 정상이다. 사방이 완전히 트인 정상 삿갓바위에 올라 빽빽이 들어선 서울의 빌딩숲을 내려다봤다. 갑자기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산천은 의구한데 성곽은 간데없고 빌딩숲만….

    정상을 지나 청운동으로 내려가는 길의 성곽은 그나마 옛 모습 그대로 간직돼 있어 성벽 원형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하산길 끝이 북악산과 바로 연결된다.

    북악산(342m)은 서울의 주산이다. 옛 이름은 백악(白岳)이다. 정상에 가면 백악산이란 비석이 지금도 세워져 있다. 지난 2007년 문화재청이 부아암, 대은암 등 북악산 일대를 문화재로 지정했다. 아직 군사보호구역으로 출입 때 신분증이 필요하다.
    북악산 구간은 신분증 꼭 챙겨야

    자하문터널 위 창의문(자하문)으로 향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입구에 들어서니, 청계천 발원지라는 비석이 눈에 띈다. ‘이곳에서 북동쪽 북악산 정상 쪽으로 약 150m 지점에 항상 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약수터가 있으므로 이를 청계천 발원지로 정했다’라고 새겨져 있다.

    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창의문이 보인다. 창의문은 도성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을 보존하고 있어 다른 문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 고증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오른(동)쪽으로 북악산 방문신청서를 작성하는 관리사무소가 있다.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산행 준비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 (위)신당동 우수 조망소에서 남산 자유총연맹 방향으로 난 탐방로. (아래)장충동 고갯길에 있는 서울 성벽. 하단부와 상단부에 따라 축조 방법이 달라 보인다.
    이제 북악산으로 출발이다. 북악산은 40년 가까이 인적을 통제했던 터라 서울에 남은 유일한 생태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곽의 모습도 비교적 잘 보존돼 있고, 울창한 소나무숲도 엿볼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은 나무데크로 잘 정돈된 급경사다. 경사가 45도 이상 될 듯싶었다. 오르막길 중간중간에 쉼터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백악마루와 청운대를 거쳐 지나갔다.

    성곽을 따라가다 보면 외부로 튀어나온 성곽이 가끔 있다. 이는 성벽을 타고 오르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곡장’이라 부른다. 거무스름하게 이끼 낀 성벽에 간혹 새겨진 글자들이 보였다. ‘성벽 축조 당시 공사구역 표시, 공사 담당 군현, 공사 일자와 공사 책임자의 직책과 이름들이다’라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전국에서 수십만 명을 동원한 대역사였으니 책임소재가 필요했으리라 싶었다.

    드디어 도성 북문인 숙정문에 다다랐다. 좌청룡 지맥을 보존해야 한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태종 이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특별히 기우제를 지내는 시기에만 개방했다. 오랜 시간 닫혀 있어 그런지 숙연함이 느껴졌다. 북쪽으로는 삼청각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했고, 성북동도 한눈에 들어왔다. 남쪽으로는 종로 전경도 희뿌연 날씨 속에서 희미하게 보였다.

    ▲ 낙산 서울성곽길은 탐방로 확대공사로 지금 한창 보수 중이다.
    와룡공원을 거쳐 혜화동 쪽으로 향했다. 서울과학고 앞에서 방향이 모호했다. 잠시 도로로 내려가다 ‘아니다’ 싶어 주민들에게 길을 물었다. 바로 경신고 뒷벽 골목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경신고 뒷벽은 원래 성벽 담을 그대로 사용한 듯 고풍스런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주춧돌은 섬돌이고, 그 위로는 석축 담벼락이었다. 골목을 따라 20여 분 내려가니 혜화문이 나왔다. 1990년대 초반에 복원된 지금의 혜화문은 원래 터에서 서북쪽으로 약 30m 옮겨졌다고 한다. 혜화문은 확장된 8차선 도로 중앙에 있어, 도로를 원 지반보다 약 5~6m 낮추어 조성하다 보니 완전히 훼손돼 지금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이제부터 도심 속을 누비는 트레킹이다. 도심 속 성곽의 흔적을 찾아가야 한다. 혜화문을 나와 한성대 쪽으로 지하도를 건넜다. 성곽이 가물가물했다. 행인과 주민에게 물으니 방향이 엇갈렸다. 성곽이 연결됐음직한 방향을 추리했다. 한성대 방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제대로 찾았다. 1㎞쯤 가니 대대적으로 성곽 탐방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원래 좁은 길이었으나 차가 한 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확장하고 주변 정비도 하고 있었다. 도심 속에서 성벽을 따라 걸었다. 그 맛도 새로웠다. 산 속에서 숱하게 걸었지만 성벽을 따라 걷기는 처음이었다.

    ▲ 낙산 서울성곽 암문.
    도성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125m)은 낙타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유명인사들이 주거를 마련하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지금은 산 중턱까지 아파트가 들어서고 정상 부근엔 서민 주택이 운집해 있다. 그나마 정상에 노인정과 낙산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서울 도성 안을 전망할 수 있다.

    낙산 지역은 1975년부터 1989년까지 성곽 복원사업이 이뤄져 거의 연결된 상태다. 도성의 남쪽 끝 흥인지문(동대문)과 북쪽 끝 혜화문이 낙산지역의 시작과 끝이다. 중간 중간에 암문과 쉼터가 마련돼 성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잠깐 쉬어갈 수도 있도록 돼 있다.

    드디어 흥인지문이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흔적이 얼핏 보이는 듯했다. 흥인지문은 서울 성곽에서 유일하게 성문 외부에 옹성을 둘렀다. 옹성은 반달 모양으로 북쪽만 개방해 출입하도록 했고, 3면을 막아 취약한 성문의 방어력을 보강했다. 낙산 줄기가 내려온 방향으로 옹성이 열려 지형조건을 잘 이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문은 옹성 시설을 갖췄으면서도 임진왜란 때 왜적이 가장 먼저 입성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좌청룡·우백호·남주작·북현무 모두 돌아

    ▲ 1.1990년대 초반에 복원된 혜화문. 2.조선시대 북문이었던 숙정문. 내내 통제되었던 길이라 숙연하게 느껴진다. 3.보물 1호인 흥인지문(동대문).
    동대문과 청계천 오간수교를 지나 동대문운동장 앞 도로를 따라 걸었다. 도저히 성곽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어쨌든 광희문을 찾아야 했다. 방향을 잡았다. 지하철 동대문역 1번 출구로 내려가서 3번 출구로 나오니 바로 앞에 광희문이 나왔다. 횡단보도를 건너 광희문 앞에 섰다. 도성의 남소문인 광희문, 이곳은 그 옛날 수구문(水口門)과 시구문(屍口門)으로 불렸다. 청계천이 흘러나오는 곳에 세워졌다 해서 수구문이라 불렸고, 서쪽의 서소문과 함께 도성 내의 장례 행렬이 동쪽 방향으로 지날 때 통과하는 문으로 사용됐다고 해서 시구문이다.

    광희문에서 잠시 성벽을 따라 탐방로가 있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졌다. 전부 주택이다. 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갔다. 30m쯤 내려가다 GS25 편의점에서 성벽이 있었던 방향, 남(오른)쪽으로 틀었다. 성곽은 없지만 주택가에 섬돌의 형체는 있었다. 섬돌의 형체를 따라 계속 갔다. 장충체육관 앞 도로가 나왔다. 바로 위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듯했다. 따라 올랐다.

    서울 성곽 안내판과 함께 다시 성벽이 이어졌다. 서울 성곽의 시대별 축조기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있었다. 태조 땐 비교적 잔 석재로, 세종 땐 하부는 대형 석재로 상부는 잔 석재로, 숙종 때는 정방형으로 벽돌을 쌓듯이 다소 경직된 분위기로 축성했다는 기록이다.

    성을 따라 남산 방향으로 올라가다 성벽이 끝나는 지점에서 성 안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국자유총연맹으로 내려갔다. 자칫 길을 잘못 들어 계속 가다 보면 남산터널 방향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여기에도 성곽은 없지만 자유총연맹 앞을 거쳐 남산으로 진입하면 된다.

    이젠 마지막 코스인 남산(265m)이다. 국립중앙극장을 거쳐 300m쯤 오르니 성곽탐방로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남산도 이미 정비가 된 상태였다. 남산산악회 옆으로 숲길이 나 있었다. 그 길은 순환로와 연결됐다. 순환로를 따라 오르기도 잠시, 마침내 남산 팔각정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목멱산은 곧 도성의 남산인데, 인경산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남산은 도성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는 일반화된 이름이고, 고유명은 목멱산, 인경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봉수대도 바로 옆에 있다. 태종 6년(1406년) 12월부터 갑오개혁 때까지 500년간 국방의 중요한 시설이었다. 이어 성곽을 따라 서울시 과학교육원과 맞은편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거쳐 백범광장을 지나 숭례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꼬박 이틀이 걸렸다. 백두대간에서 뻗은 한북정맥의 보현봉으로부터 북악에 이른 산줄기는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는 응봉과 낙산을 솟구치고 동대문에 이른다. 또 서쪽으로는 우백호 인왕산을 거쳐 남대문의 낮은 구릉을 지나 남산을 솟구치며 동대문 쪽으로 나아간다. 그 둘레를 쌓은 서울 성곽 길은 18㎞ 남짓 되는 역사적인 길이다. 그 길을 따라 한양 600년의 역사를 떠올리며 숨결을 느껴보는 것만큼 좋은 트레킹도 없을 것 같다. 힘들지만 전혀 힘들지 않은 걷기였다.

    ▲ (위)조선의 주요 국방시설 중 하나였던 남산봉수대. (아래)북악산 자락에서 정릉으로 넘어가는 교차로.

    서울 성곽은

    1395년 조선 개국 직후 축성
    1422년 石城으로 개축

    서울 성곽은 태조 4년(1395) 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건립이 완성되자 곧바로 정도전이 수립한 도성 축조계획에 따라 수축하기 시작했다.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산성으로 축성했다. 성곽을 조기에 완공하기 위하여 1396년 농한기인 1, 2월의 49일 동안 전국에서 11만8000명을 동원하는 대역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때 대부분의 공사를 마치고 가을 농한기인 8, 9월에 다시 전국에서 7만9000명을 동원해서 나머지 공사를 마무리하고 4대문과 4소문을 준공했다.

    27년이 지난 세종 4년(1422년) 다시 대대적인 보수·확장공사를 벌였다. 그 해 1월 농한기에 전국에서 약 32만 명의 인부와 2200명의 기술자를 동원하여 석성으로 수축했다. 당시 서울 인구가 약 10만 명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의 공사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공사로 인한 사망자수만도 872명에 달했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국란을 겪으며 국방의식이 고조되자 숙종은 일부 신하의 반대를 무릅쓰고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 3군영을 동원해 또 한 번 대규모로 성곽을 정비하고, 나아가 북한산성까지 쌓으며 도성의 방어체제를 정비했다. 이것이 의도적으로 헐어내기 전 서울 성곽의 모습이다.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전차를 부설하면서 동대문과 서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헐려 나갔고, 이듬해에는 용산과 종로 사이 전차 부설을 위해 남대문 부근을 없앴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서 서대문과 혜화문(동소문)이 헐리며 사실상 평지의 성곽은 모두 철거됐다.

    1970년대 중반부터 서울 성곽 복원계획에 따라 삼청지구, 성북지구, 광희지구, 장충 남산지구, 청운지구가 차례로 복원됐고,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들어 삼선지구와 동숭지구가 새 모습으로 단장했다. 복원 가능한 나머지 구간은 성곽 옆 트레킹 코스 조성과 동시에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순례 사전 준비

    순례도 부록, 신분증 챙기세요

    서울 성곽은 600년 한양 역사의 상징이고 문화유산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체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보면서 느끼는 것이다. 서울 성곽 전체 길이는 도상거리만 18㎞ 남짓 된다. 하루에 끝내기엔 조금 무리다. 이틀에 걸쳐 구간으로 나눠 걸으면 무난할 것이다. 거리가 길다 보니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 걷기 편한 등산화나 트레킹화가 필수다. 간식과 물도 꼭 챙겨야 한다. 인왕산과 북악산을 오르내리는 코스는 중간에 식사를 하기에도 여의치 않을 수 있다.

    특히 북악산 구간은 출입하기 전 신분 확인을 받아야 한다. 만 18세 이상은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을 꼭 지참해야 출입이 허용된다.

    그냥 한번 걸어 보는 것도 좋지만 사전 정보를 숙지하고 가면 더 많은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종로구청에서 처음 제작한 ‘서울성곽 600년’이란 순례도가 있다. 전체 윤곽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월간山> 편집실은 종로구청의 협조를 얻어 이 순례도를 이번 달 <월간山> 별책부록으로 인쇄, 독자들께 배포한다. 녹색연합에서 발행한 ‘서울성곽 순례길’이란 소책자도 있다. 종로구청이나 인사동 북촌 관광안내소, 녹색연합 사무실, 탐방안내소 등에서 원하면 준다. 전체 구간에 대한 안내와 구간별 상세도, 유적에 대한 설명까지 곁들여 있어 떠나기 전에 한 번 보고 가면 유적에 대한 정보가 전체적으로 파악된다. 서울 성곽을 따라가면서 사전 준비가 됐으면 한양 600년 숨결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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