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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대 영조 : 구리 인창 동구릉(원릉)
    산행 과 여행/국보, 고궁, 왕릉 탐방 2009. 9. 15. 13:41

    영조임금, 어머니를 생각하니 눈물·콧물이 흐른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009. 05. 08

     
     

     

     

              

             

              “아! 이제야 25년 동안 낳아주고 길러주신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
              듯하다. 지금 이 비문을 나 스스로 짓는 것은 자식으로서 사친(私親, 후궁 신분인
              임금의 친어머니)의 마음을 삼가 받든다는 뜻이다. 붓을 잡고 글을 쓰려 하니 눈물·
              콧물이 얼굴을 뒤덮는다. 옛날을 추억하노니 이내 감회가 곱절이나 애틋하구나!”

     

              이는 영조임금이 자신의 어머니 숙빈 최씨가 세상을 뜬지 26년 만인 1744년 7월
              어머니의 묘에 ‘소령(昭寧)’이란 묘호(墓號)를 올리고 무덤 앞에 세우는 돌비석의
              비문(묘갈문)에 어머니를 애타게 그리는 마음을 풀어놓은 글입니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는 무수리 출신으로 측은하고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조는
              어머니를 기억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요. 어버이날에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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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어머니들의 모습  

     

              “언제나 흰옷으로 앉아 계셨습니다. 무명옷이건 명주옷이면 인조견 옷이건 옷은
              흰옷이어야 했습니다. 평생 은비녀에 쪽머리셨고, 머리를 감은 다음에는 곱게 빗어
              동백기름을 살짝 바르는 것이 모양내는 행사 전부였습니다. 평생 색깔 나는 화장품을
              바르신 적이 없습니다. ~ 야단 한 번 치시는 걸 본 기억이 없습니다. 다소곳이 눈을 내려
              깔고, 조용조용 혼잣말을 하시면 그것이 말씀이셨습니다.”

     

             <좋은생각> 2005년 8월호에 실린 카피라이터 이만재님이 쓰신 “외할머니의 추억” 중
             일부입니다. 이렇게 그려진 여인, 그분은 이만재님의 외할머니만은 아닙니다. 예전의
             우리 조선 어머니들은 모두 그랬습니다. 쪽진 머리의 흰옷 입은 조용한 모습의
             여인네들을 그리워합니다. 크게 야단치는 법이 없었던 이제 세상에 안 계신 어머니가
             가슴 시리게 그립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조선의 마음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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